안창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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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idaimon Prison2.JPG|섬네일|[[일제 강점기]]의 [[서대문 형무소]]]]
[[파일:안창호, 방응모 외 십이명가 서첩 十二名家書貼.jpg|섬네일|왼쪽|안창호,[[방응모]] 공저 십이명가 서첩 (1936년)]]
일인 간수들에게서 "기다나이야츠!(더러운 자식)"라고 욕을 들을 만큼 온몸에 병이 든 것은 일제에 의한 대전 감옥 생활과 종로 유치장 생활 때문이었다.<ref name="gyul00"/> 대전 감옥 생활로 그의 숙환인 [[소화불량]]이 더욱 악화되었고, 폐와 간이 나빠졌다. 도산의 임종시의 병명은 「간경화증 겸 만성기관지염 겸 위하수증」이었다.<ref name="gyul00"/>
 
그는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 항상 [[담배]]를 입에 물고 있을 정도로 [[담배]]를 많이 피웠다. 비서 [[구익균]]이 그에게 '선생님은 왜 다른 건 다 실천하시면서 담배 끊는 것만은 못 하십니까'라고 항상 말해도 끝내 못 끊다가 나중에 감옥에 가서야 끊었다.<ref name="dosanpy"/> 그러나 금단 현상 역시 옥중의 그를 심하게 괴롭혔다. [[1935년]] [[2월]] 질병의 악화로 병보석을 신청, [[윤치호]], [[김성수]], [[이광수]] 등이 보석금을 지불하여 대전 감옥에서 2년 반 만에 가출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