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 (진 장양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그해 9월, 진왕 정은 조희가 노애 사이에서 낳은 2명의 아들들을 죽이고 조희를 옹(雍)에 유폐하였다. 그러자 모초(茅焦)가 진왕 정에게 "진이 바야흐로 천하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 대왕께서는 모후를 유배시켰다고 합니다. 제후들이 이를 듣고 진나라를 배반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라 말했다. 진왕 정이 이에 곧 태후를 함양으로 맞아들였다가 다시 감천궁(甘泉宮)에 살게 했다.<ref>《사기》 권6 진시황본기, 《사기》 권85 여불위열전</ref>
 
[[기원전 228년]](진시황 19), 조희는 죽었다.<ref>《사기》 권6 진시황본기, 《사기》 권85 여불위열전</ref> 시호를 제태후(帝太后)라고 했으며, 장양왕과 함께 채양(茝陽)에 묻었다.<ref>《사기》 권85 여불위열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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