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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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00년 "조선 버퍼존"을 최초로 주장하여 마침내 남북한 분단과 [[38선]]으로 관철시킨 러시아가, 100년만에 견해를 바꾸어, 2011년 11월 최대 국책 연구소 [[IMEMO]]에서 남한 위주의 통일이 러시아 국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특별보고서를 발행했다. 100년만에 러시아의 견해가 바뀌었다. 남한 위주의 통일이, 한국을 중국의 영향권에서 보다 러시아 영향권에 들게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강경파는 중국의 패권 확장을 반대한다. 러시아는 2020년 한국이 통일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타국들과의 차이는, 그냥 예상이 아니라 러시아가 직접 그렇게 만들 것이란 뉘앙스의 말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 완충국: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하여 강대국들이 직접 국경을 접함으로써 일어나게 될 긴장관계를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약소국.
* 청일전쟁:1894년 6월∼1895년 4월 사이에 청(淸)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다툰 전쟁.
* 러일전쟁:1904∼1905년에 만주와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
* 태평양전쟁:1941~1945년까지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로,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되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났다.
* 38선: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소 양국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점령한 군사분계선이다.
 
=== 한반도 분단과 조선총독부 ===
[[일본제국]]이 미국에 의해 두 발의 원자탄을 폭격당하고 소련이 [[8월 13일]]에 [[청진 전투]]까지 벌이자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종결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kr.sputniknews.com/society/20150813/508127.html# |제목=8월 13일 소련군 한반도서 일본군 패배 결정적 역할한 청진상륙작전 실시 |확인날짜=2015-11-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1117015121/http://kr.sputniknews.com/society/20150813/508127.html# |보존날짜=2015-11-17 |깨진링크=예 }}</ref>. 하지만 [[8월 15일]]에도 [[소련군]]이 [[청진시]]에서 4천명의 일본군과 [[청진 전투]]를 계속 벌이자 [[미국]]은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막기 위해 38선 북쪽은 [[소련군]]이 주둔하고, 남쪽은 [[미군]]이 주둔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소련]]은 [[일본]]이 패망하자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원산]]을 거쳐 [[평양]]으로 향했다. 9월 6일 미군은 서울에 주둔하여 즉각 군정을 실시하였다.<ref name="한영우567">한영우, 다시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89-8341-057-4, 567-571쪽</ref> (→[[한국의 군정기]]) 한편, [[경성]] 중앙청에서는 [[조선총독부]]가 [[소련군]]이 [[경성]]을 점령하고 시베리아로 유배된다는 우려로 인해 [[여운형]]에게 총독부를 맡기게 했는데 이는 여운형에게 일본의 안전보장과 뒷일을 맡기게 한 것이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GkAYicc5WXQ&t=13s 또다른 6.25전쟁]2017. 2. 21.</ref>. 하지만 여운형은 8월 16일에 오히려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세우고, 정치범들을 모두 석방했다. 그런데 [[8월 20일]]이 넘어도 소비에트 연방이 오지 않자, 조선총독부는 미국이 남한에 오기 전에 '조선인들이 일본을 괴롭히고 있고, 소련편을 든다'고 거짓정보를 알리자 이에 미국은 남한을 미워하면서 통제된 상태를 원하게 되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qzHq-bAvDTE KBS 광복절 특집 조선총독부 최후의 25일] 2014.9.3</ref>. 게다가 3년 군정을 다 한 후 [[미국]]은 [[애치슨 선언]]을 실시했는데 이는 조선이 제외된 방위선이였지만 [[미국]]은 [[한국 전쟁]]에서 [[국제 연합]]군으로 참여함으로써 [[적화통일]]을 면할 수 있었다. 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국 전쟁]]을 [[미국]]이 [[남조선]]을 부추겨서 먼저 전쟁을 일으켰고 미국이 다른 국가를 강제로 참가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많은 한민족인들을 괴롭혔다는 거짓 뉴스를 주장하기도 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XvsRWx3eGd8&list=LLUydD79LG-JMPc8Lj5ngZMA&index=16 Д/ф 유엔은 미국의 검이 아니다 (КНДР)]2014. 7. 24.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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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휴전과 함께 휴전 당시의 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의 군사분계선|군사분계선]]이 놓이게 되었다. 그 위치는 대략의 차이는 있으나 전쟁 이전의 [[38선]]을 중심으로 동서에 걸쳐 놓이게 되었으며 동으로는 [[강원도]] [[고성군 (강원도)|고성군]]에서 부터 서로는 [[임진강]]에 이른다. 군사분계선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이 되었다.<ref>, 한국전쟁, 책과 함께, {{ISBN|89-91221-10-6}}, 346쪽</ref>
 
== 결과 ==
한반도의 분단과 대치 상황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국 전쟁은 분단 체제를 강화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남과 북은 지금까지 체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하여 이산가족이 발생하고,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
 
양측이 통일을 위해 첫 협상에 나선 것은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시기였다. 이후 [[1991년]]에는 [[국제 연합]] 회원으로서 관계 재정립을 위한 [[남북 기본합의서]]로, [[2000년]]에는 [[6·15 남북 공동선언]]으로, [[2007년]]에는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으로 순차적인 협상에 임하였다. 하지만, [[김정일]]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실시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8년]]에는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다시 펼쳤는데 [[김정은]]이 [[베트남]] [[개혁개방]]을 원했다고 나온다. 이후 [[2018년 북미정상회담]]을 [[싱가포르]]에서, [[2019년]]에는 [[2019년 북미정상회담]]을 [[베트남]]에서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건 결렬되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