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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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을 비롯한 박트리아 마르기아나 유물이 [[인더스 문명]]의 유적과 [[이란 고원]], [[페르시아 만]] 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 제5대새로운 문명? ==
 
박트리아 마르기아나의 주민들은 밀과 보리를 수리 재배(irrigation farming)하는 정착인들이었다. 북쪽 스텝 지방의 [[안드로노보 문화]]의 유목민들과도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트리아 마르기아나의 인상적인 거대 건축 기술, 청동기 도구, 도자기, 반보석 장신구 등은 당시 어느 문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 [[역사|세계 문명사]]).
== 인도-이란 가설 ==
 
박트리아 마르기아나는 그 주민이 인도-이란인이었다는 가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언어학]]에서 [[인도-이란어]]군은 [[인도-유럽어족]]의 큰 계열 중 하나로 현재 이란에서 사용되는 [[페르시아어]], 인도에서 사용되는 [[힌디어]] 등 여러 언어 집단의 조상이다. 인도이란 조어를 사용한 인도-이란인들은 [[인도-유럽 조어]]를 사용하던 초기 인도-유럽인 집단에서 갈라나와 동쪽으로 갔다고 생각된다 (→ [[비교 언어학]]). 사리아니디 자신도 박트리아 마르기아나인들이 인도-이란인들이라는 주장을 하며 많은 유적과 유물을 [[조로아스터교]]의 모체가 되는 종교 의례의 흔적으로 해석하기까지 하였다. 예를 들어 일부 건물들은 원(原)조로아스터교의 신전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해석 가능한 문자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박트리아 마르기아나인들이 어떤 언어와 민족 집단에 속하는지는 단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반론한다. 또 넓은 분포를 보이는 박트리아 마르기아나인들이 단일 언어·민족 집단에 속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주장한다.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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