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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기관 정보
|이름 = {{BASEPAGENAME}}
|현지어 이름 = 朝鮮總督府
|그림크기 =
|그림2 = Japanese General Government Building.jpg
|그림크기2 =
|그림설명2 = 경복궁 조선총독부 청사
|그림 = File:Seal of the Government-General of Korea.svg
|그림설명 = 문장
|약칭 =
|설립일 = [[1910년]] [[10월 1일]]
|설립 근거 = [[일본 제국]]의 [[한반도]] 통치
|전신 = [[통감부|조선통감부]]
|해산일 = [[1945년]] [[9월 2일]]
|후신 =
|소재지 = {{국기|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경복궁]]
|직원 =
|예산 =
|모토 =
|기관장 이름 = 초대 총독
|기관장2 =
|기관장2 이름 =
|상급기관 = [[파일:Imperial Seal of Japan.svg|18px]] [[일본 황실]]
|산하기관 =
|각주 =
}}
{{한국사}}
 
'''조선총독부'''({{llang|ja|朝鮮総督府|조센소토쿠후}})는 [[일본 제국]]이 [[1910년]] [[10월 1일]]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한반도]]에 대한 통치를 위해 운영하던 직속기관이었다. 본부의 소재지는 당시 [[경기도]] [[경성부]](현재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있었다.
 
[[1905년]](광무 8년) [[대한제국]] 시기에 설치된 [[통감부|조선통감부]](韓國統監府, {{llang|en|Resident-General of Korea}})를 전신으로 하여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직후에 출범하였으며 초대 조선총독으로 앞서 통감으로 있던 육군대장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취임하였다. [[1914년]] [[3월 1일]]에 조선총독부령 제111호(1913년 12월 29일 공포)를 통하여 지방 행정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였는데, 훗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 체계의 기본골격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총독부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패전한 이후에도 당분간 한반도 지역을 계속 통치하였고, [[1945년]] [[9월 3일]]부로 [[38도선]] 이남 지역을 [[미군정]]에게 인계하며 해체되었다.
 
== 역대 총독 ==
조선총독(朝鮮總督)은 육군·해군 대장 중에서 임명되었다. [[일본 천황]]에 직속되어 [[일본제국 내각]]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한반도]] 내에서 행정권·사법권·군사권 등의 모든 권한을 가졌다. [[1913년]] 칙령 제134호(고등관 관등봉급령)에 따르면, 조선 총독 연봉은 8,000엔이었다고 한다.<ref>[http://blog.ohmynews.com/jeongwh59/286687 <친일파는 살아 있다-41> 허수아비 감투, 중추원참의] 정운현</ref> [[사이토 마코토]]가 취임한 [[1919년]]에 형식적으로 무관 총독 임용제를 폐지하였으나 [[1945년]]에 폐지될 때까지 문관 출신의 총독은 단 한 명도 임명되지 않았다. 조선총독을 역임하고 [[일본의 총리|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거나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고 조선총독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div align="center">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90%;"
! 역대
! 이름
! 사진
! 취임
! 이임
! 이력
|-
| 초대
| [[데라우치 마사타케]]<br />(寺内正毅)
| [[파일:Masatake Terauchi 2.jpg|100px]]
| [[1910년]] [[10월 1일]]
| [[1916년]] [[10월 14일]]
| [[통감부]] 제3대 통감, {{일본 육군 계급장|대장}}, {{일본 원수휘장}}, 수상
|-
| 제2대
| [[하세가와 요시미치]]<br />(長谷川好道)
| [[파일:Hasegawa Yoshimichi.jpg|100px]]
| [[1916년]] [[10월 14일]]
| [[1919년]] [[8월 12일]]
| {{일본 육군 계급장|대장}}, {{일본 원수휘장}}
|-
| 제3대
| [[사이토 마코토]]<br />(齋藤實)
| [[파일:Makoto Saito.jpg|100px]]
| [[1919년]] [[8월 13일]]
| [[1927년]] [[12월 10일]]
| {{일본 해군 계급장|대장}}, 수상
|-
| 임시
| [[우가키 가즈시게]]<br />(宇垣一成)
| [[파일:Kazushige Ugaki 2.jpg|100px]]
| [[1927년]] [[4월 15일]]
| [[1927년]] [[10월 1일]]
| {{일본 육군 계급장|대장}}
|-
| 제4대
| [[야마나시 한조]]<br />(山梨半造)
| [[파일:Yamanashi Hanzo.jpg|100px]]
| [[1927년]] [[12월 10일]]
| [[1929년]] [[8월 17일]]
| {{일본 육군 계급장|대장}}
|-
| 제5대
| [[사이토 마코토]]<br />(齋藤實)
| [[파일:Makoto Saito.jpg|100px]]
| [[1929년]] [[8월 17일]]
| [[1931년]] [[6월 17일]]
|{{일본 해군 계급장|대장}}, 수상
|-
| 제6대
| [[우가키 가즈시게]]<br />(宇垣一成)
| [[파일:Kazushige Ugaki 2.jpg|100px]]
| [[1931년]] [[6월 17일]]
| [[1936년]] [[8월 5일]]
| {{일본 육군 계급장|대장}}
|-
| 제7대
| [[미나미 지로]]<br />(南次郎)
| [[파일:Minami Jiro.jpg|100px]]
| [[1936년]] [[8월 5일]]
| [[1942년]] [[5월 29일]]
| {{일본 육군 계급장|대장}}
|-
| 제8대
| [[고이소 구니아키]]<br />(小磯國昭)
| [[파일:Kuniaki Koiso.jpg|100px]]
| [[1942년]] [[5월 29일]]
| [[1944년]] [[7월 21일]]
| {{일본 육군 계급장|대장}}, 수상
|-
| 제9대
| [[아베 노부유키]]<br />(阿部信行)
| [[파일:Nobuyuki Abe formal.jpg|100px]]
| [[1944년]] [[7월 21일]]
| [[1945년]] [[9월 28일]]
| {{일본 육군 계급장|대장}}, 수상
|}
</div>
 
== 청사 ==
{{본문|조선총독부 청사와 관사}}
[[파일:Japanese General Government Building.jpg|섬네일|200px|경복궁 조선총독부 청사]]
조선총독부 청사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이 한반도에 대한 식민통치를 시행한 조선총독부가 최고 행정 관청으로 사용한 건물이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35년의 식민통치 기간에 조선총독부는 [[남산 (서울)|남산]] 왜성대와 [[경복궁]]의 총독부 청사 2곳과 [[용산구|용산]], [[경무대]]의 총독 관저 3곳을 비롯하여 관사 다수를 건립하였다. 총독부 청사는 [[1907년]]에 남산 왜성대의 통감부 청사를 총독부 청사로 전용하였다가 [[1926년]]에 경복궁 [[흥례문]] 구역을 철거하고 청사를 신축하였다. 경복궁의 총독부 청사는 [[대한민국]] 수립 이후 정부청사로 사용되다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전용되었다. 그 후 이 건물의 철거와 보존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철거되었고 건물의 부재는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져 보존되어 있다. 총독 관저는 [[1910년]]부터 남산 왜성대의 일본 공사관을 관저로 사용하였고 [[1908년]]에 건립된 용산의 관저를 별도로 운용하였으며 [[1937년]]에 경복궁 북쪽에 경무대 총독 관저를 신축하였다. 한편 [[1910년]] 이후 식민 통치 기구가 정비되면서 일본인 관리의 수가 증가하자 이들을 위한 관사가 대량으로 건설되어 보급되었다.
 
== 조직 ==
조선총독부는 [[1910년]] [[10월 2일]]부로 조선 13도의 관찰사를 도 장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가 1912년부터 도지사로 바꾸었다. 또한, 도지사 아래 부지사를 두어 도지사의 업무를 보좌하게 했고, 이방, 호방, 예방 등 각 방을 근대식 각각의 국과 과로 나누었다. 또한, 규모가 큰 부에는 국장급을, 작은 부에는 과장급만을 두어 예하 행정체계를 구성하게 했다. 행정기관은 [[면리제]]와 동제, 오가작통법에 의한 통반제였던 것을 도시지역은 동(洞) 대신 [[일본]]식 행정구역 명칭인 정(町)을 쓰게 하였다. 또한, 부 중에서도 규모가 큰 부는 다시 몇 개의 동을 묶어 한 개의 구(區)로 나누었다.
 
관료의 채용은 [[향리 (관리)|향리]]가 세습하던 것을 폐지하고 공개채용 시험과 고등관 시험, 판임관 시험 등의 채용시험으로 전환하였다. 관료들의 직위는 군속, 면속으로 칭하고, 기수(서기), 기사, 주사, 사무관, 서기관 등의 직위를 적용하고 차등으로 월급을 지급하였다. 또한 [[헌병]]과 [[경찰]]의 수사, 검열 등의 편의를 위해 [[한국인]] 출신의 [[순사보조원]]과 [[헌병보조원]] 등의 [[사무보조원]]을 채용해서 썼다.
 
{{Col-begin}}
{{Col-3}}
=== 1910년 10월 1일 제정 ===
* [[조선총독부 총독관방|총독관방]] - 비서과, 무관실
* 장관관방 - 서무계, 회계계(會計係)
* 내무부 - 지방계, 권업계, 학무계
** 서무과
** 지방국 - 지방과, 토목과, 위생과
** 학무국 - 학무과, 편집과
* 재무부 - 세무계, 이재계
* 총무부 - 외사국, 인사국, 회계국, 문서과
* 탁지부
** 서무과
** 세관공사과
** 사세국 - 세무과, 관세과
** 사계국 - 예산결산과, 재무과
* 농상공부
** 서무과
** 식산국 - 농무과, 산림과, 수산과
** 상공국 - 광무과(鑛務課), 상공과
* 사법부 - 서무과, 민사과, 형사과
{{Col-3}}
 
=== 1919년 8월 20일 개정 ===
* 계(係)를 과(課)로 개정했다.
* 지사관방(장관관방을 개정)
* 제1부
* 제2부
* 제3부 - 경무과, 고등경찰과, 보안과, 위생과
 
=== 종합 ===
* 총독관방(総督官房)
* 총무부(総務部)
** 인사국(人事局) - 서무과, 인사과
** 외사국(外事局)
** 회계국(会計局) - 경리과, 영선과
** 문서과(1910년 개정)<ref name="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훈령 제2호 사무분장규정">{{웹 인용 |url=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5178&pageFlag=# |제목=국가기록원 |확인날짜=2010-06-1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18142023/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5178&pageFlag=# |보존날짜=2011-11-18 |깨진링크=예 }}</ref>
** 감사실(監事室)
* 내무부(内務部)
** 서무과(1910년 개정)
** 지방국(地方局) - 지방과, 토목과, 지적과, 건축과, 위생과(1910년 개정)
** 학무국(学務局) - 학무과, 편집과(1910년 개정)
** 경무국(警務局) - 서무과, 경무과
* 탁지부(度支部: 1910년 개정)
** 서무과
** 세관공사과
** 사세국 - 세무과, 회계과, 관세과(1910년 개정)
** 사계국 - 예산결산과, 재무과(1910년 개정)
* 탁지부(度支部) - 사세국(司税局), 사계국(司計局)
* 농상공부(農商工部)
** 서무과(1910년 개정)
** 식산국(殖産局) - 농무과, 산림과, 방재과, 수산과(1910년 개정)
** 상공국(商工局) - 광무과(鑛務課), 상공과(1910년 개정)
* 사법부(司法部) - 서무과, 민사과, 형사과(1910년 개정), 특별수사과
*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 - 서무과, 조사과, 편찬과<ref>[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5181&pageFlag= 조선총독부중추원사무분장규정(1925년 개정)] {{웨이백|url=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5181&pageFlag=# |date=20111118140303 }}, 국가기록원</ref>
* 취조국(1910년 10월 설치, 1912년 폐지, 참사관실 대치)
{{Col-3}}
 
=== 직제 ===
* 총독
*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정무총감]]
* 장관 : 각 부의 장
* 실국장 : 각 실,국의 장
* 참사관 : 2명
* 비서관 : 2명
* 서기관 : 19명
* 사무관 : 19명~25명
* 기사 : 부처별 30명
* 통역관 : 각 실국별 6명
* 기수 : 337명
* 통역생
* 총독부 무관 : 육해군 소장 또는 좌관(영관급)
* 부속부관 : 육해군 좌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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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 참정권 정책 ==
[[1940년]]부터 조선총독부는 [[일본]] 제국 정부에 [[조선인]]의 참정권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1932년]] [[12월]] [[박영효]]가 [[귀족원 (일본)|귀족원 의원]]에 칙임 된 예가 있었고, [[1941년]]에 [[윤덕영]](尹德榮)과 박중양이<ref name="cho235">최유리, 《일제 말기 식민지 지배정책연구》 (국학자료원, 1997) 235페이지</ref> 선정되었는데 [[박중양]]은 이때 귀족원 의원직을 사양했다. 그러나 [[박중양]]은 [[1945년]] [[4월 3일]] 두 번째로 귀족원 의원직에 임명되자 이때는 수용한다. [[1943년]]에는 [[이진호 (1867년)|이진호]]가 칙선 되고 있었지만, 제도로서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ref name="cho235"/> 이때까지의 [[귀족원 (일본)|귀족원 의원]]은 임명되면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것을 거절한 인물은 [[박중양]]이 유일했다.
 
[[일제 강점기]] 후반 [[1945년]] 당시 [[조선인]] 귀족원 의원으로는 [[박영효]], [[윤덕영]], [[이진호 (1867년)|이진호]], [[윤치호]], [[김명준 (1870년)|김명준]], [[박중양]], [[박상준 (1876년)|박상준]], [[송종헌]], [[이기용]], [[한상룡]] 등이 선임되었다. 초기에 [[박영효]], [[윤덕영]], [[이진호 (1867년)|이진호]], [[김명준 (1870년)|김명준]], [[박상준 (1876년)|박상준]], [[송종헌]], [[이기용]], [[한상룡]] 등을 선정하고 1945년에는 [[박중양]], [[윤치호]]를 추가로 선임하였다.
 
조선인 지식인과 관료들의 참정권 요구에 답변을 회피하던 조선총독부는 자발적으로든, 강제적으로든, 권고에 의해서든 [[한국인]]들이 [[태평양 전쟁]]에 강제 징집되거나 자원해서 입대하자 이를 계기로 본국 정부에 계속해서 한국인의 [[참정권]]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1940년]]부터 계속되었던 총독부의 요구는 결국 [[1945년]] [[1월]]에 가서야 통과된다.
 
=== 조선인 귀족원 의원 선출 과정 ===
일본 제국 국회의 상원 격이었던 귀족원에 한국인 의원이 선출된 배경은 [[조선인]]들의 참정권 요구가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징병제가 [[일본]] 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의해 시행되었던 것에 비해, [[참정권]] 문제의 해결은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원안대로 관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f name="choi240">최유리, 《일제 말기 식민지 지배정책연구》 (국학자료원, 1997) 240페이지</ref> [[귀족원 (일본)|귀족원 의원]]의 칙선의원 7명은 [[1945년]] [[4월 3일]]에 선임되었는데 [[김명준]](金明濬), 박상준(朴相駿), 박중양, [[송종헌]](宋鍾憲), [[윤치호]](尹致昊), 이진용(李珍鎔), 한상룡(韓相龍) 등이었다.<ref name="songs98">송건호, 《송건호 전집 04:한국현대사 2》 (한길사, 2002) 98페이지</ref> 한편 한국인 몫의 하원격인 중의원 의원 23명은 의회가 만기되면 선거에 의해서 선출될 예정이었다.<ref name="songs98"/>
 
[[조선인]]에 대한 [[참정권]]의 부여가 법률로써 실현된 것은 [[1945년]] [[1월]]의 [[일본]] 의회를 통과한 법률 제34호 '중의원 선거법 중 개정법 율안'과 칙령 제193호 '귀족원령 중 개정안'에 의해서였고, 참정권 부여는 [[한반도]]와 [[타이완]]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ref name="choi240"/> 이를 두고 사학자 [[김유리]]는 [[참정권]] 문제 해결이 늦어졌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참정권]] 문제의 해결은 [[한반도]]에 대한 징병 시행이 발표되었던 [[1942년]]의 시점에 이루어졌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징병제 발표 시기에도 아무런 언급조차 없었고, 오히려 징병제와는 '별도로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주장되었다.<ref name="choi240"/>'고 비판했다. 그는 '징병제와는 '별도로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주장돼왔던 문제가 2,3년의 잠복 기간을 거친 후 한인들의 강한 요구라는 구실을 빌어 해결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f name="choi240"/>'고 비판한다.
 
원래 [[귀족원 (일본)|귀족원 의원]]의 피선거권은 [[일본]]은 '제국 신민인 남자로서 연령 30세 이상인 사람'으로 규정되어 있었다.<ref name="choi241">최유리, 《일제 말기 식민지 지배정책연구》 (국학자료원, 1997) 241페이지</ref>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부여된 [[참정권]]도 일부 제한이 있는 것이었다. 먼저 [[귀족원 (일본)|귀족원 의원]]의 경우는 [[한반도]]와 [[타이완]]에 거주하는 만 30세 이상의 남자로서 명망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칙임 된 사람 10명 이내를 참가시키며, 7년 임기로 하였다.<ref name="choi241"/> 이 10명의 귀족원 의원 가운데 몇 명씩을 배당할 것인가에 대한 명문 규정은 없었으나, 7명을 한반도에, 나머지 3명을 타이완에 할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귀족원 의원들은 1945년 4월에 鈴木 내각이 성립한 직후의 임시의회에 참가하고 있다.<ref name="choi241"/>
 
원래 [[일본]] 출신 일본 귀족원 의원의 임기는 종신이었음에도 [[한반도]]와 [[타이완]] 출신 의원의 임기를 7년으로 한 것은 또 다른 차별을 만든 것이었다.<ref name="choi241"/>
 
일본 정부는 시간이 지나면 하원 격인 [[중의원]]에도 한인을 참가시킬 계획이었다. [[중의원]]에 있어서는 공선(선거)에 의해야 한다는 원칙에 근거해 있는 만큼 선거의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었던 것으로 보인다.<ref name="choi241"/> 여기에 대해 [[일본]] 본국과 조선총독부 모두 [[보통선거]]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고, 이 때문에 선거 방법은 제한선거에 의할 것으로 결정되었다.<ref name="choi241"/> 즉 선거권을 제한하는 데 있어 기준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일제는 직접 [[국세]] 15원 이상을 납부하는 사람을 [[선거권]]자로 결정하고 있었다. 이것은 일제가 이미 실시하고 있었던 지방자치 단체 의원 선거의 경우<ref name="choi241"/> 보다도 그 자격 기준이 훨씬 더 강화된 것인데, 당시 도회, 부회, 읍회, 면협의회 선거의 선거권도 그 자격 기준이 국세 5원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ref name="choi242">최유리, 《일제 말기 식민지 지배정책연구》 (국학자료원, 1997) 242페이지</ref>
 
그러나 조선인 중의원은 일본 제국 [[귀족원 (일본)|귀족원]]과 중의원에게 안건이 계류 중에 있던 [[8월]]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되면서 전면 백지화된다.
 
== 연표 ==
{{Col-begin}}
{{Col-2}}
=== 1909년 ~ 1929년 ===
* [[1909년]] [[12월 4일]] - 한국 일진회에서 "한일 합방을 요구하는 성명서" 상주문이 제출되었다.
* [[1910년]] [[3월 14일]] - 토지 조사 사업 시작
* [[1910년]] [[6월 30일]] - 헌병 경찰 제도 발족
* [[1910년]] [[8월 22일]] - 한일합방 조약 체결
* [[1910년]] [[10월 1일]] - 조선총독부 설치 (전날인 [[9월 30일]] 총독부 및 소속 관제에 대한 관제 공포)
* [[1911년]] [[8월 23일]] - 제1차 조선 교육령. 국어를 일본어로 한다.
* [[1912년]] [[1월 1일]] - 표준시 UTC 8시 30분에서 UTC 9시로 변경
* [[1912년]] [[4월]] - 보통 학교용 언문 철자법 확정
* [[1912년]] [[9월 9일]] - 고종의 형 흥친왕 사망
* [[1914년]] [[3월 1일]] - 행정 구역 개정 (부에서 군면 제도)
* [[1917년]] [[3월 22일]] - [[이준용 (1870년)|이준용]] 사망
* [[1919년]] [[1월 21일]] - 고종황제 붕어(崩御)
* [[1919년]] [[3월 1일]] - [[3·1 운동|삼일 만세 운동]] 시작( - [[1919년]] [[5월]])
* [[1919년]] [[8월 12일]] - 사이토 마코토, 제3대 총독으로 취임
* [[1919년]] [[8월 20일]] - 헌병 경찰 제도 폐지
* [[1919년]] [[10월 5일]] - 김성수, 경성방직주식회사 설립
* [[1920년]] [[3월 5일]] - [[조선일보]] 창간
* [[1920년]] [[4월 1일]] - [[동아일보]] 창간
* [[1920년]] [[12월 27일]] - 총독부, 산미 증산 계획
* [[1925년]] [[11월 22일]] - 제1차 [[조선공산당]] 조직 미수 사건
* [[1926년]] [[4월 1일]] - 경성제국대학 개설
* [[1926년]] [[4월 25일]] - 순종황제 붕어(崩御), 인산 후 [[영친왕]]이 이왕직 세습
* [[1926년]] [[6월 10일]] - [[6·10 만세운동]]
* [[1926년]] [[6월]] -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
* [[1927년]] [[2월 16일]] - 사단법인 경성 방송국, 라디오 방송 시작
* [[1927년]] [[5월 2일]] - 조선질소주식회사 설립
* [[1927년]] [[8월]] -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
* [[1928년]] [[8월]] -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
* [[1929년]] [[11월 3일]] - 광주학생사건 (- 1930년 3월)
{{Col-2}}
 
=== 1930년 ~ 1945년 ===
* [[1930년]] [[5월 30일]] - 간도 5.30 사건
* [[1930년]] - 언문 철자법 제정
* [[1931년]] [[7월 2일]] - 만보산 사건
* [[1931년]] [[9월 18일]] - 만주사변 발발
* [[1931년]] [[1월 8일]] - 애국단원 [[이봉창]], 도쿄에서 천황 암살 미수 사건
* [[1931년]] [[4월 29일]] - 애국단원 [[윤봉길]] ,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
* [[1936년]] [[8월 9일]] -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 [[1937년]] [[6월 1일]] - [[김일성]], 보천보 전투를 일으켰다.
* [[1937년]] [[7월 7일]] - 중일전쟁 발발
* [[1937년]] [[10월 2일]] - "황국신민의 서사" 제정.
* [[1938년]] [[2월 26일]] - 육군 특별 지원자 법령 공포
* [[1938년]] [[3월 4일]] - 조선 교육령 개정으로 한국어 수업을 필수에서 제외함.
* [[1940년]] [[2월 11일]] - 창씨개명 실시
* [[1941년]] [[3월 31일]] - 국민학교 규정 개정, 한국어 수업 폐지
* [[1941년]] [[12월 8일]] - 태평양전쟁 발발
* [[1942년]] [[10월 1일]] - 조선어학회 사건
* [[1944년]] [[4월 1일]] - 제1회 징병 검사 시작
* [[1944년]] [[8월 23일]] - 여자 정신대 근로령 공포
* [[1945년]] [[8월 9일]] - 소련 대일본 참전, 두만강을 넘는다.
* [[1945년]] [[8월 15일]] - 일본 정부 항복과 포츠담 선언 수락. 소비에트 연방이 청진시에 일본군과 전투로 인해 조선총독부가 여운형을 임명하여 여운형은 조선 건국 준비위원회 결성
* [[1945년]] [[8월 16일]] - 소련군, 청진시 점령
* [[1945년]] [[8월 21일]] - 소련군, 평양 진주
* [[1945년]] [[8월 25일]] - 미군, 인천 상륙
* [[1945년]] [[9월 6일]] - [[여운형]] 등은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
* [[1945년]] [[9월 7일]] - 미국 극동 군사령부, 조선의 군정 선언 (즉시 독립 부인)
* [[1945년]] [[9월 9일]] - 총독부, 항복 문서에 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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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3·1 운동]]의 불씨가 남아 있던 [[1922년]] 순사직 경쟁률은 약 2.1대 1 수준에 불과했으나 문화정치가 본격화한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그 경쟁률이 10대 1을 웃돌았다. 1926년에는 856명 모집에 9천193명이 지원, 약 10.7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1932년에는 854명 모집에 1만 6천193명이 지원해 19대 1로 경쟁률이 수직으로 상승했다.<ref name="sussi">[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090514183413252&p=yonhap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선망의 직장(?)]</ref> 순사 등에 대한 19.6대 1로 정점을 찍은 1935년 이후 순사에 대한 선호는 1936년 14.1대 1, 1937년 10.9대 1로 내리막길을 걸었으나 [[1920년]]대 중반부터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 경쟁률이 10∼20대 1에 이를 정도로 순사직이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ref name="sussi"/> 이를 두고 [[연세대학교]]의 장신은 "순사는 조선인 사회에서의 좋지 못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법률로 보장된 권한 탓에 해마다 높은 지원율을 보였다."라고 지적하면서 "관리의 최말단인 까닭에 지원자의 학력 수준은 [[보통학교]] 졸업자가 80% 정도를 차지했다."라고 분석했다.<ref name="sussi"/>
 
== 역대 총독부의 정책, 일제의 조선 지배 방식 변천과정 ==
 
* {{국기나라|일본 제국}} - 1890년대 경부철도 부설권, 동학난 진압 등의 이권 침탈 (총독부가 없던 시절)
 
* {{국기나라|일본 제국}} - 1905년 러일 전쟁에서의 일본 승리 확실시로 이토 히로부미의 외교권 간섭(총독부가 없던 시절)
 
* {{국기나라|일본 제국}} - 1910년대 한일합방, 토지조사사업과 무단통치(데라우치 시절)
 
* {{국기나라|일본 제국}} - 1919년 3·1 운동 진압. (하세가와 시절)
 
* {{국기나라|일본 제국}} -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과 문화통치(사이토 시절)
 
* {{국기나라|일본 제국}} - 1929년 독립 운동 탄압으로 인한 문화통치의 종료 (2차 사이토 시절)
 
* {{국기나라|일본 제국}} - 1930년대 일본의 전체주의화와 만주사변, 조선의 병참기지화. (우가키 시절)
 
* {{국기나라|일본 제국}} - 1936년 중일전쟁 수행을 위한 조선의 병참기지화 가속, 창씨개명 시행 (미나미 시절)
 
* {{국기나라|일본 제국}} - 1942년 태평양 전쟁 수행을 위한 조선의 병참기지화 가속, 조선인 대거 동원 (구이소 시절)
 
* {{국기나라|일본 제국}} - 1944년 태평양 전쟁의 방어전을 수행 및 종전 후 식민지 처리(아베 시절)
 
== 같이 보기 ==
{{위키자료집|조선총독부령}}
* [[일제 강점기]]
* [[조선총독부 관보]]
* [[타이완 총독부]]
 
== 각주 ==
{{각주}}
 
== 참고 자료 ==
<small>
* 김윤정, 《조선총독부 중추원 연구》 (경인문화사, 2011)
* 강만길, 《고쳐 쓴 한국현대사》 (창작과비평사, 2006)
* 신복룡, 《한국사 새로보기》 (풀빛, 2001)
* 최유리, 《일제 말기 식민지 지배정책연구》 (국학자료원, 1997)
* 이현희, 《이야기 인물한국사》 (청아출판사, 2007)
*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20:우리 힘으로 나라를 찾겠다》 (한길사, 2006)
</small>
 
== 외부 링크 ==
* [http://gb.nl.go.kr/ 조선총독부 관보 활용 시스템]
 
{{조선총독부}}
{{일본 제국의 외지의 행정 구역}}
 
[[분류:조선총독부| ]]
[[분류:1910년 설립]]
[[분류:1945년 폐지]]
[[분류:일제 강점기]]
[[분류:일본의 군사]]
[[분류:정부]]
[[분류:폐지된 일본의 국가기관]]
[[분류:일제 강점기의 행정]]
[[분류:한국의 군정기]]
[[분류:한국의 역사]]
[[분류:전간기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