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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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黃晳暎, [[1943년]] [[1월 4일]]{{efn-ua|1943년 12월 14일 출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ref name="창비 연보" />}}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1962년]], 《입석부근(立石附近)》으로 [[사상계]]의 신인문학상에 입선하며 등단하였고 [[1970년]], 《탑(塔)》이 [[조선일보]]에 당선되며 문단에서 활동하였다.<ref>{{웹 인용 | url=https://terms.naver.com/entry.nhn?cid=958&docId=690687&mobile&categoryId=1992 | 제목=네이버 지식백과 현대문학인 황석영 | 출판사=국어국문학자료사전}}</ref>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9월경에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서 부인, 아들과 함께 정착하여 생활해왔는데 여권 만료 시한인 1992년 2월이 임박해 독일 내의 합법적인 체류에 문제가 생기면서 1991년 11월 14일 독일을 떠나 거처를 미국 뉴욕으로 옮겼다. [[1993년]] 귀국 이후 방북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구형받고 법원에 의해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가 [[1998년]] 사면 석방되었다.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하자 북한은 관영 중앙통신을 통해 『그의 방북과 해외활동은 순수 작가로서의 사명감과 함께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의 의무감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어떤 경우에도 결코 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황석영이 북한에 매수되어 밀입북하여 북으로부터 25만 달러의 공작비를 받았다는 당국의 발표에 대해서 『작가로서 동족이 살고 있는 공화국 북반부를 다녀갔을 뿐이고 우리는 그를 동포 작가로서 대해주었을 따름』이라며 이를 『터무니없이 날조된 수사결과』라며 "황석영을 즉각 석방하라"고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720258]</ref> 황석영의 부인은 1994년 5월 19일부터 22일에 매일 오후 8시 뉴욕의 댄스 시어터 워크숍(DTW)의 베시 쉔베르크극장에서 1973년 전위무용가 홍신자에 이어 한국인으로 두번째로 인간문화재인 이매방, 이동안, 김숙자 선생 등으로부터 사사한 승무와 살풀이, 태평무를 독무로 선보이는 <굿춤> 데뷔공연을 한 바가 있는 안무가 김명수이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848619]</ref>
 
황석영은 민중 역사소설로 불리는 《장길산》을 통해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에 주목했으며, 《한씨연대기》와 《삼포 가는 길》등을 통해 산업화 시대의 시대정신과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세계를 문학적으로 대변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길산》, 《[[삼포 가는 길]]》, 《손님》, 《오래된 정원》, 《심청》등이 있다.<ref>{{웹 인용 | 저자=구인환 엮음 | url=https://terms.naver.com/entry.nhn?cid=3423&docId=940211&mobile&categoryId=3423 | 제목=네이버 지식백과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 출판사=
신원문화사 | 확인날짜=2006-11-05}}</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