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포상팔국의 난 때 가야 왕자를 신라에 보낸 건 어디 소설 내용인가요. 고구려군은 종발성까지 공격하러 갔지 가야군이 후퇴했다는 기록은 없음.
태그: 각주 제거됨
Weidooooo (토론 | 기여)
→‎국명: 상고음의 출처가 없음.
9번째 줄:
가락국(駕洛國)이라는 이름은 [[고려]]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국명이며 삼국유사 이전에는 금관가야 혹은 구야국, 가야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관가야에 대해 처음중국 사서에사서인 전하는삼국지 이름은동이전에서는 '''[[구야국]]'''(狗邪國) 또는 '''[[구야한국]]'''(狗邪韓國)인데,으로 '''狗'''자의 상고음(上古音)은 '가이'로, '''狗邪'''는 '가이야'나 '가야'로 읽었을 것으로기록되어 추정된다있다.
 
이후에 가야는 가야(伽倻, 加耶, 伽耶), 가락(駕洛, 加洛), 가라(加羅, 伽羅, 迦羅), 가량(加良) 등 여러 한자로 표기되었다. 금관가야가 [[1세기]] 중엽부터 [[4세기]] 말까지 [[변한]] 지역 연맹체의 중심국가였기 때문에 '가야'라는 말은 [[변한]] 지역 전체 또는 그 국가연맹체를 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이 때문에 금관가야에 이어 후기가야연맹을 이끌었던 [[반파국]] 역시 금관가야가 전기가야연맹을 이끌 때 쓰던 [[대가야]]란 이름을 연맹체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