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70번째 줄:
[[1564년]] 아버지이자 첫 스승인 [[성수침]]의 상을 당하다. 부친이 병환에 위독할 때 그는 두번이나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베어 약에 타서 드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생없이 부친상을 당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조선 명종|명종]]이 죽고 [[조선 선조|선조]]가 즉위하자 그는 인재를 초빙하는 정책을 펴, 선조 초년에 그는 학덕으로 천거되어 참봉(參奉)·현감 등을 제수받았으나 출사하지 않고, 파산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그 뒤로도 장원(掌苑), [[조지서]] 사지, [[주부]], [[판관]], [[첨정]] 등의 직책이 내려졌으나, 그는 이를 모두 고사하고 취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을해당론 이후 [[심의겸]], [[정철]] 등을 중심으로 [[서인]]이 형성되자 그는 [[서인]]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 활동에도 참여하여, 그의 문하에서는 [[오윤겸]], [[김장생]], [[김집]], [[조헌]], [[김상용]], [[이귀]], [[김덕령]], [[이시백]], 조식, 정엽, [[윤훤]], 조건 등이 배출되었다. 또한 그의 친구인 율곡 [[이이]]의 문하생인 조헌, 한교, 이귀, 정엽, 황신 등은 율곡 이이의 문하와 우계 성혼의 문하에 두루 출입하여 수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