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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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는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의 국립 대학 목록|국립대학]]이다. 약칭은 '''서울대''', '''{{lang|en|SNU}}'''라고 한다.
 
원 [[경성제국대학]]을 포함한 여러 관·공·사립 전문학교를 통합하면서 [[국립 대학|국립 종합 대학]]인 ‘국립서울대학교’가 설립됐다.<ref>즉, 해방 이후 최초로 통합되어 설립된 국립 종합 대학이다.</ref> 1948년 ‘서울대학교’로‘'''서울대학교'''’로 명칭이 바뀌었고, 2011년에는 [[국립 대학|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됐다.<ref>[http://www.snu.ac.kr/sk_abo/sk_abo_hi/sk_abo_hia/sk_abo_hia.jsp 서울대학교 연혁]</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0835 한양대 설립자 김연준 리더십 연구]. 신동아, 2007-12-26.</ref> 법인화 후 설립된 법인의 이름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이다.
 
1946년에 개교할 당시에는 9개 단과대학(문리과대학, 공과대학, 농과대학, 법과대학, 사범대학, 상과대학, 의과대학, 예술대학, 치과대학)과 한 개 대학원으로 출발하였으며, 그 이후 점차 학부와 대학원의 규모가 늘었다. 캠퍼스도 옛 경성대학의 동숭동 캠퍼스(현 [[마로니에공원]] 자리)를 주캠퍼스로 활용하고, 그 외에 연건동(현 [[서울대학교병원]]과 의과대학 자리), 공릉동(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자리), 을지로, 소공동, 남산동, 그리고 수원 등지에 단과대학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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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서울대학교의 역사}}
=== 서울대학교의 기원 ===
[[19세기]] 말 [[대한제국]]의 [[대한제국 고종|고종 광무 태황제]]는 자력 근대화를 위한 교육 사업을 추진하면서 처음으로 여러 근대식 고등 교육 기관을 설치했다. 1895년 4월 19일, 칙령을 통해 최초의 근대 법학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가 설립됐고, 그해 5월 6일 입학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고 다음해 [[이준 (1859년)|이준]]을 포함한 47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조선 최초의 근대적 국립 고등 교육 기관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법관양성소는 이후 '''법학교'''(1909년) - '''경성전수학교'''(1911년) - '''경성법학전문학교'''(1922년) - '''국립서울대학교 법과대학'''(1946년)을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법과대학'''이 2018년 2월까지 존속하고 문을 닫는다. 2018년 3월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과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법과대학 석사과정과 박사과정만이 남아있게 된다. 같은 해 5월 10일 소학교 설립 준비의 일환으로 소학교 교사 양성기관인 ‘한성사범학교’가‘'''한성사범학교'''’가 설립됐다. 일곱 차례에 걸쳐 졸업생 195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한성사범학교는 이후 '''관립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1911년) - '''국립서울대학교 사범대학'''(1946년)을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으로사범대학'''으로 이어졌다.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더욱 적극적으로 고등 교육 기관 설립을 추진했다. 1899년 고종은 “우리나라에 각종 학교를 대략 설치했으나 의학교는 아직 만들지 않았다”며 의학교관제를 반포하고 전문 의료인을 양성했다. [[의학교]]는 이후 '''대한의원 교육부'''-'''경성의학전문학교'''-'''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의과대학'''을 거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계승됐다. [[대한의원]]은 1901년 최초로 교육부 산하에 산파 및 간호부양성과를 신설하는데 이는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의간호대학'''의 시작이었다. 1904년에는 [[농업]]과 [[상업]]을 가르치는 '''[[농상공학교]]'''가 개교했고, 이후 분화와 재편을 거듭하면서 '''국립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농과대학'''을 거쳐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이어졌다.<ref>[http://www.snu.ac.kr/about/ab0101_tab1.jsp?c=1 서울대 60년사]</ref>
 
=== 개교와 그 이후의 변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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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061201이장무.JPG|left|섬네일|제24대 서울대 총장 [[이장무]]]] -->
1960년에는 독재 정권에 항거한 [[4·19 혁명]]으로 서울대학교 재학생 7명이 사망했으며, 그 해 11월 민족통일연맹이 결성됐다. 4·19 혁명이 끝나고 대학에는 학생회 조직과 같은 자율적인 분위기가 잠시 조성됐으나 이듬해 [[5·16 군사 정변]]으로 탄압이 다시 이어졌다.<ref name="khan60">{{뉴스 인용|제목=개교60년 서울대 세계와 경쟁하라|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9281117451|출판사=경향신문|저자=이은정 기자|날짜=2006-09-28 }}</ref> 1960년대는 이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이 계속 이어지는 시기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27년 만에 빛 본 1980년 ‘신동아’ 계엄검열 삭제 기사 ‘4·19에서 10·26까지 학생운동이 걸어온 발자취’|url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262&article_id=0000000247&section_id=102&menu_id=102|출판사 = 신동아|저자 = 김도현|날짜 = 2007-04-25|확인날짜 = 2007-10-27|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41015081851/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보존날짜 = 2004-10-15|깨진링크 = 예}}</ref> 한편 1961년에는 정부의 ‘국립대학 정비절차’에 따라 많은 사범대 학과가 폐지되고 문리대로 합쳐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범대 교수와 학생들은 이에 거세게 항의했으며, 이듬해 정부는 없어진 학과들을 다시 부활시켰다.<ref>{{뉴스 인용|제목=파란만장했던 학제 변천사|출판사=대학신문|날짜=2006-04-08|url=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66 }}</ref>
|제목=개교60년 서울대 세계와 경쟁하라
|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9281117451
|출판사=경향신문
|저자=이은정 기자
|날짜=2006-09-28 }}</ref> 1960년대는 이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이 계속 이어지는 시기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27년 만에 빛 본 1980년 ‘신동아’ 계엄검열 삭제 기사 ‘4·19에서 10·26까지 학생운동이 걸어온 발자취’
|url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262&article_id=0000000247&section_id=102&menu_id=102
|출판사 = 신동아
|저자 = 김도현
|날짜 = 200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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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날짜 = 200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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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한편 1961년에는 정부의 ‘국립대학 정비절차’에 따라 많은 사범대 학과가 폐지되고 문리대로 합쳐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범대 교수와 학생들은 이에 거세게 항의했으며, 이듬해 정부는 없어진 학과들을 다시 부활시켰다.<ref>{{뉴스 인용
|제목=파란만장했던 학제 변천사
|출판사=대학신문
|날짜=2006-04-08
|url=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66 }}</ref>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대학교 단과대학들은 [[서울특별시]] 동숭동(문리과대학), 연건동(의과대학), 을지로(사범대학, 음악대학), 공릉동(공과대학), 종암동(상과대학), [[경기도]] [[수원시]](농과대학) 등 곳곳에 나뉘어 있었다. 이에 서울대학교는 종합화 계획을 세우고 1975년에 공과대학, 농과대학(현재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의과대학)과 의과대학 본과만을 제외하고 단과대학들을 모두 새로 세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고, 1980년에는 [[노원구]] [[공릉동]]의 [[공과대학]]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다. 현재 공릉동 캠퍼스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사용하고 있다. 수원에 남아 있던 단과대학도 2003년에 관악으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현재와 같이 관악과 연건캠퍼스만 남게 됐다.<ref>[http://www.snu.ac.kr/sk_abo/sk_abo_hi/sk_abo_hic/sk_abo_hic7/sk_abo_hic7.jsp 서울대학교 발자취 2000년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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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캠퍼스 ====
[[파일:SNU worldwind.gif|right|섬네일|위성에서 바라본 관악캠퍼스(남북이 역전돼 있다)]]
대학 본부가 있는 관악캠퍼스는 1975년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에 따라 조성됐다. 원래는 [[관악 골프장]]이 있던 자리였다. 1970년대 1만 4천여 명이었던 학생 수가 1980년대에는 2만 4천여 명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학교 식당 등의 생활 지원 시설 및 연구 시설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1987년 ‘서울대학교 발전장기계획-캠퍼스부문계획’이 수립돼 시설 면적이 기존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났다.<ref>[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524 관악 캠퍼스, 왜 이렇게 무질서한 미로 공간이 됐나], 대학신문, 2008년 4월 12일.</ref> 현재 관악캠퍼스에 있는 약 200개의 건물 중 절반은 1990년 이후에 지어졌으며,<ref>{{뉴스 인용|제목=00~06학번들의 캠퍼스 ‘공사판의 추억’|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54068.html|출판사=한겨레신문|날짜=2006-09-04 }}</ref> 캠퍼스를 감싸고 있는 순환도로의 길이는 약 5킬로미터이다.<ref name="joins07">{{뉴스 인용|제목='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잖아요' 숨겨진 서울 산책 코스 세 곳|url=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760309|출판사=중앙일보|날짜=2007-06-14 }}</ref>
|제목=00~06학번들의 캠퍼스 ‘공사판의 추억’
|url=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54068.html
|출판사=한겨레신문
|날짜=2006-09-04 }}</ref> 캠퍼스를 감싸고 있는 순환도로의 길이는 약 5킬로미터이다.<ref name="joins07">{{뉴스 인용
|제목='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잖아요' 숨겨진 서울 산책 코스 세 곳
|url=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760309
|출판사=중앙일보
|날짜=2007-06-14 }}</ref>
 
관악캠퍼스의 정문을 이루는 구조물은 ‘국립’, ‘서울’, ‘대학교’의 머리글자인 ‘[[ㄱ]], [[ㅅ]], [[ㄷ]]’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개교 60주년을 맞아 은회색을 입혔다. 정문 디자인을 새롭게 구상한 디자인학부의 백명진 교수에 따르면, 중립적인 색상인 은회색을 통해 공적인 교육 공간의 느낌을 표현하였고 조명을 설치해 24시간 열려 있는 서울대의 이미지를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ref>[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304 서울대의 얼굴, ‘빛이 난다’], 2006년 9월 16일.</ref> 서울대 정문은 [[서울 지하철 2호선|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는 [[서울 지하철]]에서 대학 이름을 역명으로 사용하는 역 중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한 것이다.<ref>{{뉴스 인용|제목 = 관악구청 앞~서울대 정문 1500m ‘디자인 서울거리’ 추가 선정|url = http://www.siminilbo.co.kr/news/news.php?id=seoul&mode=view&no=42218|출판사 = 시민일보|날짜 = 2008-04-02}}{{깨진 링크|url=http://www.siminilbo.co.kr/news/news.php?id=seoul&mode=view&no=42218 }}</ref>
|제목 = 관악구청 앞~서울대 정문 1500m ‘디자인 서울거리’ 추가 선정
|url = http://www.siminilbo.co.kr/news/news.php?id=seoul&mode=view&no=42218
|출판사 = 시민일보
|날짜 = 2008-04-02
}}{{깨진 링크|url=http://www.siminilbo.co.kr/news/news.php?id=seoul&mode=view&no=42218 }}</ref>
 
정문 근처에는 대운동장을 끼고 제일 가까이 체육관과 [[서울대학교 미술관|미술관]], 경영대학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체육관은 세계 최초의 [[올림픽]] [[탁구]] 경기장으로서 [[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경기가 이 곳에서 열렸다. 그 뒤로 산 쪽으로 사회과학대학, 법과대학, 음악대학, 미술대학, 인문대학, 사범대학 등의 순서로 인문 계통의 단과대학이 있으며 중앙도서관의 터널을 경계로 반대편에는 약학대학,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자연과학대학]], 공과대학 등 이과 계통의 단과대학이 있다. 정문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오르면 후문으로 가는 갈림길(속칭 ‘기숙사삼거리’)이 나오는데, 왼쪽 길을 택하여 내려가면 [[낙성대역]]에 이르게 되며 오른쪽 길을 택할 경우 버들골, 노천강당, 교수회관, 학군단, 신공학관 등으로 갈 수 있다. 낙성대역을 향하는 길에는 서울대학교 기숙사인 ‘관악사’와 교수 회관인 ‘호암교수회관’이 있다.<ref>[http://www.snu.ac.kr/about/ab0801_tab1_1.jsp 관악 캠퍼스 안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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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과거에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의과대학이 있던 수원캠퍼스는 이들 단과대학이 2003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함에 따라 매각이 추진 중이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애물단지가 된 서울대 수원캠퍼스|url=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6/11/13/200611130084.asp|저자=김소민|출판사=헤럴드경제|날짜=2006-11-13 }}</ref> 서울대 법인화 이후 동쪽 부지는 서울대학교 소유로 남았지만 서쪽 부지는 기획재정부 소유가 되었다. 서울대학교는 서울대 소유인 구 농학도서관을 리모델링해서 [[서울대학교 도서관]]의 오래된 책들을 보존하기 위한 보존도서관을 만들었다. 기획재정부와 경기도가 구 수원캠퍼스의 정부 소유 부지를 경기도 소유 [[경인교육대학교]] 경기캠퍼스 부지와 교환함에 따라 정부 소유 부지는 모두 [[경기도]]로 소유권이 넘어갔고 [[경기상상캠퍼스]]가 되었다. 수원캠퍼스의 서울대 소유부지 기숙사(상록사)는 경기도 수원 소재 대학생들을 위해 경기도에 임대를 주었다.
과거에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의과대학이 있던 수원캠퍼스는 이들 단과대학이 2003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함에 따라 매각이 추진 중이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애물단지가 된 서울대 수원캠퍼스
|url=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6/11/13/200611130084.asp
|저자=김소민
|출판사=헤럴드경제
|날짜=2006-11-13 }}</ref> 서울대 법인화 이후 동쪽 부지는 서울대학교 소유로 남았지만 서쪽 부지는 기획재정부 소유가 되었다. 서울대학교는 서울대 소유인 구 농학도서관을 리모델링해서 [[서울대학교 도서관]]의 오래된 책들을 보존하기 위한 보존도서관을 만들었다. 기획재정부와 경기도가 구 수원캠퍼스의 정부 소유 부지를 경기도 소유 [[경인교육대학교]] 경기캠퍼스 부지와 교환함에 따라 정부 소유 부지는 모두 [[경기도]]로 소유권이 넘어갔고 [[경기상상캠퍼스]]가 되었다. 수원캠퍼스의 서울대 소유부지 기숙사(상록사)는 경기도 수원 소재 대학생들을 위해 경기도에 임대를 주었다.
 
2008년 수원시 [[영통구]] [[광교신도시]]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을 세웠으며,<ref>{{뉴스 인용|제목=광교 명품신도시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개원|url=http://www.fnnews.com/view?ra=Sent1201m_View&corp=fnnews&arcid=00000921264032&cDateYear=2008&cDateMonth=03&cDateDay=21|날짜=2008-03-21|저자=유제원|출판사=전자신문 }}</ref>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은 본부는 관악에 있지만 수업과 연구는 광교의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건물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시스템면역의학연구소]]는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에 조성됐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에 [[한국과학기술원]]과 함께 국제 과학 복합 연구 단지를<ref>{{뉴스 인용|제목=서울대 (BT)ㆍKAIST (IT) 청라에서 만난다|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7041106121|저자=문혜정|출판사=한국경제|날짜=2007-04-12 }}</ref>조성할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됐다. [[강원도 (남)|강원도]] [[평창군]]에 그린바이오 첨단 연구 단지<ref>{{뉴스 인용|제목=〈평창〉 서울대 연구단지 조성사업 윤곽|url=http://www.kwnews.co.kr/view.asp?aid=207042400090&s=501|날짜=2007-04-25|출판사=강원일보 }}</ref>인 평창캠퍼스를 조성했다. 평창캠퍼스는 [[평창역]] 인근에 있다.
2008년 수원시 [[영통구]] [[광교신도시]]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을 세웠으며,<ref>{{뉴스 인용
|제목=광교 명품신도시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개원
|url=http://www.fnnews.com/view?ra=Sent1201m_View&corp=fnnews&arcid=00000921264032&cDateYear=2008&cDateMonth=03&cDateDay=21
|날짜=2008-03-21
|저자=유제원
|출판사=전자신문 }}</ref>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은 본부는 관악에 있지만 수업과 연구는 광교의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건물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시스템면역의학연구소]]는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에 조성됐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에 [[한국과학기술원]]과 함께 국제 과학 복합 연구 단지를<ref>{{뉴스 인용
|제목=서울대 (BT)ㆍKAIST (IT) 청라에서 만난다
|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7041106121
|저자=문혜정
|출판사=한국경제
|날짜=2007-04-12 }}</ref>조성할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됐다. [[강원도 (남)|강원도]] [[평창군]]에 그린바이오 첨단 연구 단지<ref>{{뉴스 인용
|제목=〈평창〉 서울대 연구단지 조성사업 윤곽
|url=http://www.kwnews.co.kr/view.asp?aid=207042400090&s=501
|날짜=2007-04-25
|출판사=강원일보 }}</ref>인 평창캠퍼스를 조성했다. 평창캠퍼스는 [[평창역]] 인근에 있다.
 
서울대학교는 또한 [[전라남도]] [[구례군]]과 [[광양시]] 등지에 200km<sup>2</sup>에 가까운 연습림을 소유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 = 서울대 보유 토지 여의도의 23배 달해|url = http://economy.hankooki.com/lpage/news/200503/e2005032717424947590.htm|날짜 = 2005-03-27|저자 = 강동호|출판사 = 서울경제|확인날짜 = 2007-06-26|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929125207/http://economy.hankooki.com/lpage/news/200503/e2005032717424947590.htm#|보존날짜 = 2007-09-29|깨진링크 = 예}}</ref>
|제목 = 서울대 보유 토지 여의도의 23배 달해
|url = http://economy.hankooki.com/lpage/news/200503/e2005032717424947590.htm
|날짜 = 2005-03-27
|저자 = 강동호
|출판사 = 서울경제
|확인날짜 = 2007-06-26
|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070929125207/http://economy.hankooki.com/lpage/news/200503/e2005032717424947590.htm#
|보존날짜 = 2007-09-29
|깨진링크 = 예
}}</ref>
 
== 대학 및 개설 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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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상 ==
[[대한민국 정부]]가 시행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수석들이 주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ref>현원섭, "대입 수석 합격자 23인의 인생 스토리", 월간중앙 2월호 (2000)</ref>, 졸업생들이 대한민국 학계·정계·재계에 대거 포진돼 있다.<ref name="kjm">{{뉴스 인용|제목=학벌 엘리트여, 학원에 감사하라|출판사=한겨레21|날짜=2006-11-21|저자=강준만 }}</ref> 많은 인재를 배출해내고 있는 동시에 국내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혹은 '대한민국의 최고 지성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인식이 일반이다. 대한민국 [[학벌]]주의의 정점에 서있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서울대 개교 60주년〉 6·25때 부산 피란… 91년에 첫 직선총장|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06809|출판사=서울신문|날짜=2006-10-13 }}</ref>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이 초기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서울대학교 폐지를 추진한 적이 있었다.
|제목=학벌 엘리트여, 학원에 감사하라
|출판사=한겨레21
|날짜=2006-11-21
|저자=강준만 }}</ref> 많은 인재를 배출해내고 있는 동시에 국내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혹은 '대한민국의 최고 지성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인식이 일반이다. 대한민국 [[학벌]]주의의 정점에 서있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서울대 개교 60주년〉 6·25때 부산 피란… 91년에 첫 직선총장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0106809
|출판사=서울신문
|날짜=2006-10-13 }}</ref>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이 초기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서울대학교 폐지를 추진한 적이 있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인 [[타임스]]가 발표한 [[타임스 고등교육 세계 대학 평가|세계 대학 평가]]와 전문 대학평가 기관인 QS가 발표한 [[QS 세계 대학 평가]] 등의 세계 대학 평가에서 서울대학교의 순위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5년 93위로 처음 100위권에 진입한데 이어 2006년 63위, 2007년 51위,<ref>{{뉴스 인용|제목=서울대 「더 타임스」 대학평가 세계 51위|url=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965|출판사=대학신문|저자=이덕원|날짜=2007-11-11 }}</ref> 2008년 50위, 2009년 47위, 2010년 50위, 2011년 42위, 2012년 37위, 2013년 35위,<ref>[http://www.topuniversities.com/university-rankings/world-university-rankings/2013?page=1 QS World University Rankings 2013 공식 홈페이지 2013년 순위 표]</ref> 2014년 31위<ref>{{뉴스 인용|제목= 서울대학교, 2014 QS 세계대학평가 31위|url=http://www.snu.ac.kr/press-releases?bm=v&bbsidx=120722|출판사=서울대학교 홍보팀|날짜=2014-09-16|저자=서울대학교 기획처 }}</ref>
로 아시아 최고의 명문이자 일본 최고의 명문이라고 하는 도쿄대와 동위에 자리하는 등 매년 순위가 올랐으며, 이렇듯 국외 종합 평가에서도 국내 대학 가운데 최고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2015년까지 세계 30대 대학에 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으며 2025년 이내에는 세계 순위에서 무려 10위권 대학 가운데 들겠다는 포부를 시사한 바 있다. <ref>{{뉴스 인용|제목= 서울대, 영국QS 세계대학평가서 35위... 역대 최고|url=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3/09/10/0701000000AKR20130910188000004.HTML?template=5567|출판사=연합뉴스|날짜=2013-09-10|저자=윤보람 }}</ref> 하지만, QS 평가는 학술적, 혹은 연구성과 보다는 평판도가 대학 순위에 큰 비중을 차지해서 신뢰성의 문제가 많이 제기된다.
|제목=서울대 「더 타임스」 대학평가 세계 51위
|url=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965
|출판사=대학신문
|저자=이덕원
|날짜=2007-11-11 }}</ref> 2008년 50위, 2009년 47위, 2010년 50위, 2011년 42위, 2012년 37위, 2013년 35위,<ref>[http://www.topuniversities.com/university-rankings/world-university-rankings/2013?page=1 QS World University Rankings 2013 공식 홈페이지 2013년 순위 표]</ref> 2014년 31위<ref>{{뉴스 인용
|제목= 서울대학교, 2014 QS 세계대학평가 3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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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울대학교 홍보팀
|날짜=2014-09-16
|저자=서울대학교 기획처 }}</ref>
로 아시아 최고의 명문이자 일본 최고의 명문이라고 하는 도쿄대와 동위에 자리하는 등 매년 순위가 올랐으며, 이렇듯 국외 종합 평가에서도 국내 대학 가운데 최고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2015년까지 세계 30대 대학에 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으며 2025년 이내에는 세계 순위에서 무려 10위권 대학 가운데 들겠다는 포부를 시사한 바 있다. <ref>{{뉴스 인용
|제목= 서울대, 영국QS 세계대학평가서 35위... 역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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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연합뉴스
|날짜=2013-09-10
|저자=윤보람 }}</ref> 하지만, QS 평가는 학술적, 혹은 연구성과 보다는 평판도가 대학 순위에 큰 비중을 차지해서 신뢰성의 문제가 많이 제기된다.
 
2015년에 타임스 등 여러 대학 평가기관에서 평가대학을 확대하고, 채점기준을 바꾸면서 QS를 제외한 대부분 대학 평가기관 순위가 하락했다. 2015년 타임스 기준 순위는 85위, ARWU 기준 순위 100위권 이하, 2018 US News&World Report 기준 순위 129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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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활동 ==
 
=== 총학생회 ===
{{본문|서울대학교 총학생회}}
[[파일:080605-snu1.jpg|섬네일|right|200px|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및 동맹 휴업 총투표 결의 후 행진하는 서울대학교 재학생들(2008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군부독재 정권 시대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끈 주요 대학 학생회 가운데 하나이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주화의 달성과정에서 서울대학교 학생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2007년을 기점으로 50대를 맞았으며, 3.8 여성의 날 행사, 4.19혁명 기념 대행진, 4.30 메이데이 행사, 봄 대동제(5월), 가을 대동제(10월), 총학생회 선거(11월) 등을 기획한다.<ref name="yoram">[http://www.snu.ac.kr/sk_abo/sk_abo_no/sk_abo_noc/sk_abo_noc.jsp 2007년 서울대학교 요람집]</ref> 2006년 [[황라열]] 총학생회장의 탄핵과, 송동길 부총학생회장의 사퇴로 한동안 단대 회장단 회의 체제로 운영됐다.<ref>{{뉴스 인용|제목=송동길씨 사퇴 발표|url=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08|출판사=대학신문|저자=박성미 기자|날짜=2006-07-29 }}</ref> 선거는 매년 11월에 열리지만 2006년 선거 당시 투표율이 낮아 2007년 4월에 재선거가 있었으며, 학생행진(운동권 좌파) 계열인 한성실 후보가 회장으로 당선됐다. 2007년 선거에서는 비 [[운동권]] 계열인 실천 가능 선거운동본부의 전창열 후보가 당선됐고 이듬해 선거에서도 같은 선본의 박진혁 후보가 당선됐다. 이후 이른바 ‘식권파동’,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도청 사건’ 등을 겪으며 2009년 11월, 2010년 4월 두 차례의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며 2010년은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로 운영됐다. 2010년 11월, 학생행진 계열로 사회대 학생회장 출신인 지윤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됐으며 이후 2012년 3월에 선출된 사노위 계열로 법대 학생회장 출신의 오준규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현재 2013년 4월에 당선된 산림환경학과 소속 김형래가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제목=송동길씨 사퇴 발표
|url=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08
|출판사=대학신문
|저자=박성미 기자
|날짜=2006-07-29 }}</ref> 선거는 매년 11월에 열리지만 2006년 선거 당시 투표율이 낮아 2007년 4월에 재선거가 있었으며, 학생행진(운동권 좌파) 계열인 한성실 후보가 회장으로 당선됐다. 2007년 선거에서는 비 [[운동권]] 계열인 실천 가능 선거운동본부의 전창열 후보가 당선됐고 이듬해 선거에서도 같은 선본의 박진혁 후보가 당선됐다. 이후 이른바 ‘식권파동’,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도청 사건’ 등을 겪으며 2009년 11월, 2010년 4월 두 차례의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며 2010년은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로 운영됐다. 2010년 11월, 학생행진 계열로 사회대 학생회장 출신인 지윤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됐으며 이후 2012년 3월에 선출된 사노위 계열로 법대 학생회장 출신의 오준규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현재 2013년 4월에 당선된 산림환경학과 소속 김형래가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 동아리 ===
학생 동아리는 본부에 소속된 중앙 동아리와 단과대학에 소속된 단과대학 동아리로 나뉘어 있으며 본부 동아리의 수는 2006년 기준으로 103개이다.<ref name="yoram" /> 본부 동아리에 가입한 학생들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들의 취미와 특기를 연마한다.
 
서울대학교에는 체육 특기생이 없지만 [[야구]]를 비롯한 [[축구]], [[농구]]부 등이 존재한다. 1977년 창단한 야구부는 199패 1무 뒤에 2004년 첫 승을 거뒀으며,<ref>{{뉴스 인용|제목=서울대 야구부, 창단 28년 만에 첫 승|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750860|출판사=연합뉴스|날짜=2004-09-01 }}</ref> 축구부도 역시 같은 해인 2004년에야 18년 만에 승리를 맛보았다.<ref>{{뉴스 인용|제목=서울대 축구승리 “18년만이네”…순수 아마팀…86년 후 1무가 최고|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005&article_id=0000182487|출판사=국민일보|날짜=2004-10-31 }}</ref> 농구부도 기록은 좋지 않아, 2001년 이후로 무승을 기록하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꼴찌의 도전, 서울대 농구부|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022&article_id=0000099093|출판사=세계일보|날짜=2005-05-27 }}</ref> 다만 서울대학교 복싱부는 2001년부터 대학 복싱 동아리연합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네 번이나 차지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ref>{{뉴스 인용|제목=서울대는 돌주먹…각종 아마복싱대회서 우승 휩쓸며 최강군림|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03112158283&sec_id=560901|출판사=스포츠칸|날짜=2007-03-11 }}</ref>
서울대학교에는 체육 특기생이 없지만 [[야구]]를 비롯한 [[축구]], [[농구]]부 등이 존재한다. 1977년 창단한 야구부는 199패 1무 뒤에 2004년 첫 승을 거뒀으며,<ref>{{뉴스 인용
|제목=서울대 야구부, 창단 28년 만에 첫 승
|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750860
|출판사=연합뉴스
|날짜=2004-09-01 }}</ref> 축구부도 역시 같은 해인 2004년에야 18년 만에 승리를 맛보았다.<ref>{{뉴스 인용
|제목=서울대 축구승리 “18년만이네”…순수 아마팀…86년 후 1무가 최고
|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005&article_id=0000182487
|출판사=국민일보
|날짜=2004-10-31 }}</ref> 농구부도 기록은 좋지 않아, 2001년 이후로 무승을 기록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꼴찌의 도전, 서울대 농구부
|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tg=news&mod=read&office_id=022&article_id=0000099093
|출판사=세계일보
|날짜=2005-05-27 }}</ref> 다만 서울대학교 복싱부는 2001년부터 대학 복싱 동아리연합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네 번이나 차지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서울대는 돌주먹…각종 아마복싱대회서 우승 휩쓸며 최강군림
|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03112158283&sec_id=560901
|출판사=스포츠칸
|날짜=2007-03-11 }}</ref>
 
== 교내 언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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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저널''': 2007년 사범대 학생회에서 준비호를 발행하였으며 이후 연 4회 혹은 3회 발간되고 있다. 준비호 발행 이후에는 사범대 학생회 소속이 아닌 독립적인 자치언론으로 운영되고 있다.
* '''교지 관악''': 1990년에 창간, 2014년까지 매학기 말(연 2회)에 발행되었다. 본래 총학생회 산하에 있었으나 2006년 총학생회회칙에서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2014년에는 신입 기자 부족으로 폐간을 발표하였다.
* '''쥬이쌍스'''·'''스누나우''':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스》는 2002년 시작하여 꾸준하게 발행되고 있으며, 2001년 문을 연 [[인터넷]] 뉴스 ‘스누나우’는 2007년 종간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마지막 편집장 되고 싶지 않았지만…|url=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129|출판사=미디어오늘|날짜=2007-05-14 }}</ref>
|제목=마지막 편집장 되고 싶지 않았지만…
|url=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129
|출판사=미디어오늘
|날짜=2007-05-14 }}</ref>
* [http://www.snulife.com/ '''스누라이프(SNULife)''']: 1999년에 개설됐으며 학내 뉴스, [[선거]] 소식과 역사, 교수들과의 대화 등의 내용을 제공하는 등 언론으로서의 기능도 일부 담당하고 있다. 스누라이프는 비공식적인 사이트이고, 일부 학생들의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사이트로써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