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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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3세''' 또는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llang|fr|Charles Louis Napoléon Bonaparte}}, [[1808년]] [[4월 20일]] ~ [[1873년]] [[1월 9일]])는 최초의 [[프랑스]] [[프랑스의 대통령|대통령]]이자 두 번째 프랑스 [[황제]]이다. 프랑스의 마지막 [[프랑스의 군주|세습군주]]이기도 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1세]]의 조카이자 의붓외손자로 1848년에 [[2월 혁명 (프랑스)|2월 혁명]] 이후 수립된 새로운 공화국에서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쿠데타]]를 통해 [[프랑스 제2제국|제2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나폴레옹 3세는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과 함께 [[파리
나폴레옹 3세는 해외 정책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 나폴레옹 3세는 유럽과 세계 곳곳에 프랑스의 영향권을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민족주의와 공공 주권을 지지했다.<ref name="John B. Wolf 1963 p. 253">John B. Wolf. ''France, 1814–1919'' (1963). p. 253</ref> 유럽에서 그는 영국과 연합해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을 패배시켰고, 이탈리아 통일을 지지했으며 이 결과로 사보이와 니스를 획득했다. 같은 해 그는 이탈리아의 교황청 합병을 반대했다. 그의 군대는 멕시코에 원정대를 파견해 제2멕시코 제국을 설립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1866년부터 그는 새로이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한 프로이센과 충돌했다. 1870년 7월 그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스당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다. 1871년 프랑스 제3공화국이 선포되었고, 그는 영국으로 망명해 1873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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