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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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 ===
고려 말엽에 검교중랑장을 지낸 16세 '김문'(金文)은 슬하에 네 아들 [[김성원 (고려)|김성원]](金成元), 김성부(金成富), 김성룡(金成龍), 김성여(金成呂)를 두었는데 이로부터 선산 김씨는 4대 계파(系派)를 이루게 되었다.
 
* '''중서령공파'''(中書令公派) : 파조 [[김성원 (고려)|김성원]](金成元)은 고려조 서운관정(書雲觀正)과 중서령(中書省)을 지냈다. 그의 아들 '''김기(金起)'''는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지내고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다.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 정신으로 선산(善山)에 내려와 고려 유신으로 절의를 지켰다. 화의(和義)는 [[구미시|선산]](善山)의 별호이다.
 
* '''판서공파'''(判書公派) : 파조 '김성부'(金成富)는 고려조 전의부정(典醫副正)을 지내고, 조선개국 원종공신으로 호조 판서에 이르렀다. 그의 장자 김경도(金敬道)는 조산대부로 밀양교수를, 차자 김경적(金敬迪)은 강화교수를 지냈다. 그 후손들은 함경도 단천 고읍을 중심으로 길주, 성진, 이원, 풍산, 북청, 홍원 등에 세거(世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