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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濟州四三事件)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규정되어 있다.<ref>[http://www.law.go.kr/LSW/lsSc.do?menuId=0&p1=&subMenu=1&searchName=LicLs%2C0&query=4.3#liBgcolor0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55&aid=0000394162 제주 4·3…살아남은 자들의 증언]. SBS. 2016년 4월 3일.</ref> 현창용은 1948년 제주시 노형동 자택에서 어머니와 잠을 자다 경찰에 끌려가 인천형무소에서 군사재판으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고 박동수는 1949년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에서 군인들이 쏘는 총을 피해 달아나다 폭도로 내몰려 인천형무소에 끌려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폭도로 내몰려 경찰에 끌려간 뒤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유죄를 선고 받고 인천형무소 수감 생존자인 현창용(86), 박동수(85)씨 등 모두 17명이 2017년 3월 28일,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와 함께 국가를 상대로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증명할 계획이라고 하면서 행정재판인 '판결의 부존재' 소송도 동시에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4.3 당시 군사재판을 받은 수형인은 2530명, 일반 재판 수형인은 1306명이다.<ref>[http://www.jejusori.net/?mod=news&act=articleView&idxno=188983]</ref> 2019년 1월 17일, 법원이 제주 4·3 사건 생존 수형인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리며 70년만에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았다. <ref>{{뉴스 인용 |제목=법원, 제주4·3 수형인 '공소 기각'…70년 만의 '무죄' 인정 |url=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101216 |날짜=2019-01-17 |확인날짜=2019-01-17 |뉴스=SBS 뉴스}}</ref><ref>제주지방법원 2019. 1. 17. 선고 [http://jeju.scourt.go.kr/dcboard/new/DcNewsViewAction.work?seqnum=20492&gubun=44&cbub_code=000530&searchWord=&pageIndex=1 2017재고합4] 판결</ref> 반대의견: 위 내용의 기록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적 사상의 소유자가 작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 2019년 1월17일의 판결 내용은 무죄가 아니며, 그 죄는 인정하되, 절차상 하자에 의하여 공소기각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 들어 조작되고 있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내용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 후일 고증되어야 한다.)
 
== 사건의 발단 ==
=== 배경 ===
{{본문|제주 3·1절 발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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