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잔글편집 요약 없음
63번째 줄:
제17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장으로 2007년 17기 1중 전회에서 권력 서열 6위로 올랐으며, 2008년 3월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다.
 
2012년 11월 [[후진타오]] 주석으로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함께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받았다승계하였다. 2013년 3월 14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에 선출되었다. [[2018년]]에는 주석의 임기 제한을 철폐하여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에 대해 "독재 회귀"라는 부정적 평가와 "안정성 기여"라는 긍정적 평가가 엇갈린다.<ref name=":1">{{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3/05/0200000000AKR20180305134400074.HTML|제목=시진핑 '장기집권'에 엇갈린 시각…"독재회귀" vs "안정성 기여"|성=안승섭|이름=|날짜=2018-03-05|뉴스=연합뉴스|출판사=|언어=ko-KR}}</ref>
 
== 약력 ==
76번째 줄:
=== 관료 생활 ===
[[허베이 성]] [[정딩 현]] 당위원회 서기, [[푸젠 성]] [[샤먼 시]] 부시장, [[푸저우 시]] 당위원회 서기 등 [[푸젠 성]]에서의 공직 생활을 거쳐,<ref name="고쿠분">{{서적 인용 |저자= 고쿠분 료세(国分良成) |제목= 현대용어의 기초지식(現代用語の基礎知識) |쪽=499 |장=중국(中国) |출판사=지유고쿠민샤(自有国民社) |판=| 언어=일본어 | ISBN= 978-4-426-10128-2}}</ref> 2000년에 [[푸젠 성]] 당위원회 서기,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저장 성]] 당위원회 서기, 2007년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를 지냈다. 특히 [[푸젠 성]] 당위원회 서기, [[저장 성]] 당위원회 서기 재직시 경제발전에 공을 많이 세우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였다.
 
중앙무대에서 경험이 없어서 시 주석은 세력 기반이 약했다.<ref name=":0">{{뉴스 인용|url=http://news.mt.co.kr/mtview.php?no=2018022811402957584|제목=[MT리포트] 마오쩌둥의 권력 복원해 시황제가 되려는 시진핑…아무도 예상 못했던 반전 - 머니투데이 뉴스|언어=ko|확인날짜=2018-03-01}}</ref>
 
=== 정치 활동 ===
줄 84 ⟶ 82:
[[2007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 [[2008년]] 국가 부주석이 되었다. 현재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위원 겸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공산당 중앙 서기처 서기, 중국 국가주석, 중앙 당교 교장이다.
 
시진핑의 부인은 중국의 국민 가수로 통하는 [[펑리위안]](彭麗媛)이다. 당 원로이자 개혁개방의 설계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보수와 진보의 지지를 모두 받았던 시진핑은 [[2013년]] 국가주석이 되었다. 2010년 10월 18일 제 17기 5 중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이 지위를 손에 넣은 것으로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로 사실상 확정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ref>{{웹 인용 |url=http://media.daum.net/economic/world/view.html?cateid=100021&newsid=20101019133109955&p=tomatotv |제목=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따온 제목 --> |확인날짜=2010-10-1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812172002/http://media.daum.net/economic/world/view.html?cateid=100021&newsid=20101019133109955&p=tomatotv |보존날짜=2014-08-12 |깨진링크=예 }}</ref> 2012년 11월 15일 중국공산당 제18기 1 중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됐다. 그리고 2013년 3월 14일 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과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되었으며 자신의 취임연설과 다름없는 전인대 폐막연설을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ref><발간사>, 《문철월간(文哲月刊)》, 1935.10</ref>을 역설하며 '중국의 꿈(中國夢)'<ref>홍콩 가수 뤄원(羅文)이 불렀던 1984년 히트곡 명칭</ref>을 강조하였다.
시 주석의 취임쯤에 '보시라이 스캔들', '링지화 사건' 등 최상층부에서 터진 비리 사건들이 있었고, 시 주석은 당 총서기에 취임하자마자 "호랑이(고위관료)든 파리(하급관료)든 모두 잡겠다"며 철저한 부정부패 척결을 선언했다. <ref name=":0" /> 이것으로 시진핑은 많은 정적을 제거할 수 있었다.
 
[[2018년]] [[3월 11일]]에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중국 헌법]]에서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해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오랜 인연이 있던 왕치산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이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태자당 출신이면서 상하이방의 후원을 받던 보시라이, 후진타오의 비서실장 출신인 링지화가 중형에, 상하이방의 핵심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 서기, 군 최고지도부였던 궈보슝과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공청단 출신의 차기 주자였던 쑨정차이 전 충칭시 당서기 겸 정치국 위원 등이 잇따라 숙청됐다.<ref name=":0" /> 이로 인해 상하이방과 공청단 등 기존 계파가 급속히 퇴조하고 시 주석에 충성하는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측근들)이 공고해졌다.<ref name=":0" />
 
== 국정 운영 ==
시진핑의 부인은 중국의 국민 가수로 통하는 [[펑리위안]](彭麗媛)이다. 당 원로이자 개혁개방의 설계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보수와 진보의 지지를 모두 받았던 시진핑은 [[2013년]] 국가주석이 되었다. 2010년 10월 18일 제 17기 5 중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이 지위를 손에 넣은 것으로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로 사실상 확정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ref>{{웹 인용 |url=http://media.daum.net/economic/world/view.html?cateid=100021&newsid=20101019133109955&p=tomatotv |제목=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봇이 따온 제목 --> |확인날짜=2010-10-1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812172002/http://media.daum.net/economic/world/view.html?cateid=100021&newsid=20101019133109955&p=tomatotv |보존날짜=2014-08-12 |깨진링크=예 }}</ref> 2012년 11월 15일 중국공산당 제18기 1 중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됐다. 그리고 2013년 3월 14일 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과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가 되었으며 자신의 취임연설과 다름없는 전인대 폐막연설을 통해 중화민족의 부흥<ref><발간사>, 《문철월간(文哲月刊)》, 1935.10</ref>을 역설하며 '중국의 꿈(中國夢)'<ref>홍콩 가수 뤄원(羅文)이 불렀던 1984년 히트곡 명칭</ref>을 강조하였다.
 
=== 치국이정 ===
[[2018년]] [[3월 11일]]에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중국 헌법]]에서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해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전인대는 2964표 가운데 찬성 2958표, 반대 2표, 기권 3표, 무효 1표로 9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개헌 전 중국 지도자의 임기는 10년으로 제한됐으나, 개헌 후에는 원칙적으로 '종신집권'도 가능할 수 있게 된다.<ref name=":1" /><ref>{{뉴스 인용|url=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80311010005341|제목=시진핑 ‘1인 체제’ 시나리오 중국 개헌안 99% 찬성으로 통과|성=|이름=|날짜=|출판사=|언어=ko}}</ref>
 
시진핑 주석은 [[2017년]] [[10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인대에서 '치국이정(治國理政)'을 언급하였다.
 
== 국정 운영 ==
=== 중국몽 ===
{{본문|중국몽}}
중국몽(中國夢)은 시진핑 정부에서 퍼진설계한 개념으로, 중국이 추구할 이상향을 말한다. 시진핑 주석은 2012년 11월에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추대되면서부터 '중국몽'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 일대일로 ===
{{본문|일대일로}}
시진핑 주석은 [[2014년]] 11월에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을 통하여 육지 기반의 실크로드 경제 벨트 계획, 해상 기반의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계획을 융합한합친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경제 정책을 제시했다제기하기도 했다.
 
=== 소수 민족 ===
시진핑은 [[2009년]] [[7월 5일]]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 시]]에서 [[2009년 7월 우루무치 소요 사태|우루무치 소요 사태]]가 발생했을 때 사후 문제 해결을 지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혈 사태는 위구르인 주민과 한족과 무장 경찰이 충돌한 사태이다. [[2009년]] [[7월 19일]] 기준으로 중국 당국에서는 사망자 197명, 부상자 1,721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망명 위구르인 조직인 세계위구르 회의는 중국 당국과 한족의 공격으로 위구르인이 최대 3,000명 희생되었다고 주장한다.<ref>일본어 위키 번역</ref>
 
=== 종신집권 논란 ===
헌법 개정으로 종신집권을 가능하게 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다. 서구 지식인의 주류적 시각은 부정적이며, 국내에서도 반발이 있다. 반면 관영매체들은 찬성에 앞장서고 있으며, 일부 지식인들 또한 긍정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 부정적 평가 ====
중국 헌법에서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해 종신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것에 대해, 법치주의의 붕괴, 1인 독재로의 회귀를 불러올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 데이비드 섐보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조지워싱턴대학]] 교수는 "장기집권 추진은 권력의 개인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정치 엘리트의 권력을 제한하고 규제하기 위해 세웠던 원칙이 하나둘씩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ref name=":1" />
* 천제런(陳杰人) 중국정법대학 교수는 "우리는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많은 인재가 중국 내에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며 "중국의 운명을 한 사람이나 소수에 맡기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중국 인민에 대한 불신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ref name=":1" />
* 미 [[컬럼비아 대학교|컬럼비아대학]]의 앤드루 네이선 교수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는 것은 그가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사람들이 지도자의 정책에 대해 말하기를 두려워할 때 정책 실패의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ref name=":1" />
* [[1989년 톈안먼 사건|톈안먼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 지도자였으며 미국으로 망명한 왕단(王丹)은 "시진핑이 황제의 야심을 지니고 있음이 명백하게 드러났으며, 이는 중국 인민에게 중대한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양심을 지닌 중국인들은 용감하게 떨쳐 일어나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왕단이 발표한 성명에는 중국사회과학원 정치연구소장을 역임한 옌자치(嚴家其) 등 100명 가까운 중국 안팎의 저명학자들이 동참해 힘을 실었다.<ref name=":2" />
* 유명 기업인인 왕잉파(王瑛發)도 성명에서 "개헌 추진은 (인민에 대한) 배반이자 역사의 퇴행"이라며 "개헌이 만장일치로 통과되겠지만 나에게 침묵할 것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f name=":2">{{뉴스 인용|url=http://www.nocutnews.co.kr/news/4931583|제목=中 안에서도, 밖에서도…'시진핑 독재' 비판론 확산|성=|이름=|날짜=|뉴스=|출판사=|언어=ko-KR}}</ref>
 
==== 긍정적 평가 ====
주로 관영매체들이 긍정적 평가에 힘을 실어줬으나, 외국 학자들 가운데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이 있다.
 
* [[킹스 칼리지 런던|킹스칼리지런던]]의 케리 브라운 교수는 "시진핑과 당 지도부는 그들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어떠한 중국인도 국력이 약했던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은 뚜렷한 목적성, 안정성, 확실성을 지향하면서 중국의 미래에 대한 역동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장기집권 추진은)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권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권력의 집중이 가져올 문제도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정책 결정과 지도부 인선의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f name=":1" />
*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1면 논평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개헌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라면서 "이번 개헌안은 헌법의 지속성과 안정성, 권위의 기초 위에 시대에 맞게 헌법을 완성하고, 당과 전국 각 민족 인민의 염원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ref name=":2" />
*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사설에서 "서방의 가치관으로는 이번 개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서방의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특히 "서방사회가 장기간 추구하고 실천해왔던 '민주' 등 가치 등은 현실에서 끊임없이 심각한 '궤양'이 발견되고, 소외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을 부각시켰다.<ref name=":2" />
* 개헌 이후 한 중국 국책연구기관은 "정세 변화에 따라 임기를 연장하는 것일 뿐 결코 종신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당심과 민심을 좇는 헌법개정은 역사적 사명에 대한 책임이자 최대의 실사구시"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61년을 집권한 [[청나라]] [[강희제]], 53년을 재위한 [[러시아]]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 등의 사례를 들며 임기 연장 논리를 옹호하고 나섰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6/01/0200000000AKR20180601082500089.HTML|제목=중국, 박정희·푸틴·강희제 예로 들어 시진핑 장기집권 옹호|성=정주호|이름=|날짜=2018-06-01|뉴스=연합뉴스|출판사=|언어=ko-KR}}</ref>
 
== 가족 관계 ==
줄 129 ⟶ 105:
== 대한민국과의 관계 ==
[[파일:Korea China Press Conference 20130627 02.jpg|섬네일|[[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대체글=]]
* 대한민국의 [[THAAD]] 배치가 결정되자, 보복 조치를 취했다.
* [[2015년]] [[9월 2일]] [[베이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 [[2014년]] [[7월 3일]] [[박근혜]] 대통령 초청으로 부부 동반으로 방한했다.
줄 257 ⟶ 232:
[[분류:살아있는 사람]]
[[분류:베이징시 출신]]
[[분류: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분류:칭화 대학 동문]]
[[분류:태자당]]
[[분류:칭화방]]
[[분류: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분류:중국 공산당의 정치인]]
[[분류:중국의 공산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