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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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1월 29일]]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야이체]]에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한 뒤부터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유고슬라비아에서 저항 운동을 전개했다.
 
[[1945년]]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소련]]의 지원을 통해 군주제를 폐지하고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등 6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 연방구유고슬라비아)을 수립했다. [[1946년]]에는 공산주의 신헌법을 제정했으며 [[1974년]]에는 [[세르비아]]의 [[보이보디나]]와 [[코소보]]를 연방직할 자치주로 승격시켰다.
 
국가원수에 취임한 티토는 1948년 민족주의를 주장, 소련의 지도권을 부인하다가 [[코민포름]]에서 제명된 후 "독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공산주의"를 지향하였다. 비동맹 중립주의, [[미국]]·소련의 권력 정치 배격으로 대표되는 [[티토주의]]는 동구권에서 서방권 측과 관계 개선을 도모한 이단자로 규정되었으나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의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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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부터 [[1973년]] 사이에 전개된 브레즈네프·코시긴 등 소련 수뇌부와 티토 간의 상호 교환 방문과 1977년 소련의 불간섭 원칙의 확인으로 양국 관계가 호전되었으며 1970년대 대서방 접근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유고슬라비아는 기업의 영리·이윤제 등 [[시장경제]] 구조를 도입, 독자적인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추진함으로써 1970년대에는 경제적 발전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유고슬라비아는 남유럽의 가장 부유한 공산 국가로 발전했다.
 
[[1980년]] [[5월]]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사망과 함께 분열 조짐을 보이며 연방 간부 회의 집단 지도 체제로 전환하였다. 연방의회는 연방원과 공화국·자치주원의 양원제였다. [[1987년]]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가 '대(大)세르비아'대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촉발되었다.
 
[[1980년대]] 말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중앙유럽 공산주의 정권이 차례로 붕괴하자 유고 연방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의 구성 공화국이었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북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차례로 분리 독립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치른 후 [[1992년]] 남은 공화국인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신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결성하면서 구유고 연방은구유고슬라비아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