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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철'''(梁性喆, 1939년 11월 20일생20일 ~ )은 대한민국의[[대한민국]]의 제15대 [[국회의원]], 정치학자, 정치인, 외교관이다.''' 본관은 [[남원 양씨 (梁)|남원]].
 
'''== 유년기 및 직업경력''' ==
 
양성철은 1939년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출생하였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군입대를 자원해서 1960-1962년간 복무했다. 1963년 10월부터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하기 시작했으나, 1965년 미 하와이대학교 마노아 캠퍼스 동서문화센터 장학생으로, 1967년 하와이 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6년 미 국무성 초청으로 본토를 가는 도중 호놀룰루에 들른 정치인 김대중[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처음 만난다. 1967년부터 미 켄터키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시작, 1970년 이 대학교에서 이승만대통령의 사임과 하와이 망명으로 이어진 1960년 4월 혁명과 1961년 박정희의 집권을 가져온 5월 16일 쿠데타의 비교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1996년 선거에서 제15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국회 통일외무위원회 위원, 간사로 활약했다. 1998년 그는 새정치국민회의 전라남도 도당위원장 직무대행이 되었다.
 
== 대사직 ==
'''대사 직'''
양성철대사(왼편) 미 육군성 장관 토마스 화이트, 예비역 육군중장 줄리어스 벡턴이 2001년 한국전 참전 흑인 참전용사들을 위한 조화를 봉헌하고 있다.
스트랫포(Stratfor)는 그의 주미대사 임명과 함께 40년 경력의 외교관이자 통상전문가 홍순영을 주중대사로 임명한 김대중 대통령의 선택을 햇빛정책을 적극 추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북한문제 전문가인 양성철을 워싱턴에 보낸 것은 평양을 향한 한국의 정책의 자율성을 상징하는 반면, 홍순영의 역할은 중국과의 관계를 증진하고 남북한간 화해에 대한 베이징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양대사는 2003년 2월 중순 퇴임하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표를 친서로 제출했고, 그의 후임 주미대사로 한승주가 임명되었다.
 
'''== 이후 활동''' ==
 
그 뒤 그는 부인과 함께 귀국했다. 그는 고려대학교 석좌교수로 임용되어, 2003~2008년까지 가르쳤다. 그는 또한 2003년 8월부터 지금까지 김대중 평화재단 자문위원, 자문위원장,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 학력 ==
'''주요 저술'''
* 곡성 중앙초등학교
* 곡성중학교
* [[광주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정치과
* 미하와이대석사
== 경력 ==
* 미켄터키대박사ㆍ미켄터키대교수
* 경희대교수
* 국방부ㆍ외무부ㆍ통일원정책자문위원
* 유네스코운영위원
* 한국국제정치학회회장
* 통일외무위원회위원
* 국민회의국제협력위원장
*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
* 주미국대사관대사
* 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 제15대 국회의원 (전남 곡성·구례) [[국민회의]]
 
'''== 주요 저술''' ==
 
''English''
• 곡성군 올해의 인물, 2000년, 전라남도 곡성군
• 4월 학생혁명 3주년 대통령 건국포장, 1963
 
== 출처 ==
* [http://rokps.or.kr/ 대한민국 헌정회]
{{전거 통제}}
 
[[분류:1939년 태어남]]
[[분류:살아있는 사람]]
[[분류:남원 양씨 (梁)]]
[[분류:곡성중학교 동문]]
[[분류:곡성중앙초등학교 동문]]
[[분류:광주고등학교 (광주) 동문]]
[[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
[[분류:대한민국의 제15대 국회의원]]
[[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
[[분류:켄터키 대학교 동문]]
[[분류:하와이 대학교 마노아 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