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춘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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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료시절 ===
'''관중이 제환공에게 중용되어 재상이 되었을 때는 [[기원전 686년]]. 중원을 차지하고 있던 주왕실의 통제력을 갈수록 약해지고 [[제]](齊), [[초]](楚), [[진]](晉), [[진]](秦), [[연]](燕), [[노]](魯) 등을 비롯한 [[제국]](諸國)들이 차츰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국의 실리를 취하며 군웅할거하던 시절이다.'''
 
'''관중이 재상이 된 후 [[기원전 681년]] 노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겨 화의를 하던 과정에서 노나라의 장수 [[조말]]이 단도로 제환공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조말은 제나라에서 가져갈 노나라 영토를 돌려달라고 했고, 위협에 못이긴 제환공은 그러겠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영토를 돌려주지 않고 그를 죽이려 했다. 관중은 제환공을 말리며 군주가 한번 뱉은 말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제후도 이후에 제나라를 믿고 따르지 못할 것이라며 “신의”에 대해 설명했다. 결국 노나라의 영토는 다시 돌려줬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제환공의 명성은 중원에 퍼졌다.'''
 
'''제환공 재위 7년([[기원전 679년]])에 [[위]](衛)의 견(甄)에서 회맹을 열고 패자의 지위에 오른다.'''
 
=== '''사망 '''===
'''제환공 재위 41년 ([[기원전 645년]])에 관중이 병이 나자 환공이 물었다.'''
 
* '''"뭇 신하들 가운데 재상을 시킬 만한 이는 누구인가?" 관중이 말했다."임금보다 더 신하를 잘 알 사람은 없지요." 환공이 물었다. "역아(易牙)는 어떤가?" "제 자식을 죽여 임금에 영합했으니 인정에 어긋납니다. 안 됩니다." 환공이 다시 물었다. "개방(開方)은 어떤가?" "부모를 배반하고 임금에게 영합했으니 인정에 어긋납니다. 가까이 두기 어렵습니다." 환공이 다시 물었다. "수도(豎刀)는 어떤가?" "제 생식기를 갈라 임금에게 영합했으니 인정에 어긋납니다. 친애하기 어렵습니다." 관중이 죽고 나자 환공은 관중의 말을 따르지 않고 이 세 사람을 가까이 두어 중용했고, 이리하여 이들 세 사람이 정권을 전횡하게 되었다.'''<ref>네이비 지식백과사전 사기 제태공세가 권32</ref>'''
 
'''관중이 죽자 제환공은 예전의 명석한 군주가 아니었다. 제환공은 관중의 유언을 따르지 않아 사후 5명의 공자가 군주 계승권을 놓고 싸웠으며, 이 때문에 제환공의 시체는 67일간이나 방치되었고, 구더기가 우굴거려 문밖으로 팽개쳐지는 신세가 되었다.'''
 
'''관중의 도움으로 제환공 재위 43년간 ([[기원전 685년]] ~ [[기원전 642년]]) 제나라는 북쪽으로 하북성 북부, 서로는 태행산맥, 남은 하남성 중앙부 근처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 '''철학 '''==
 
'''관중의 사상은 [[사기]](史記) 관안열전과 그의 저서로 알려진 [[관자]]를 통해 알 수 있다. 관중이 직접 작성한 부분과 후학들이 그가 했던 말을 집대성한 책으로, 엄연히 말하자면 온전히 그가 작성한 책이라고는 볼 수 없다.'''
 
==== '''유물론적 사상 '''====
 
'''관중의 사상은 기초적인 유물론적 개념을 갖고있다. [[관자]](목민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나날의 생활이 즐거워지면 자연히 예의를 분별한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만 하면 도덕의식은 저절로 높아진다."''' 또 (칠법편)에서 '''"물질이 풍부하기가 천하에서 제일이 아니면 정신적으로 천하를 이끌 수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ref><신역 관자>/ 이상옥. 1985. 서울 : 명문당</ref> 이는 물질적 기초가 뒷받침이 되어야 사람의 정신,의식 또한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 '''목민(牧民) '''====
 
'''관중은 유물론적 개념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 정치체제를 구축한다. 이른바 목민이다. 백성을 기른다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 바로 관중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의 목민도 관중의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목민의 주요내용은 "사유(四維)"로 설명할 수 있다. [[사유]]는 '''예(禮),의(義),염(廉),치(恥)'''로 각각 예절, 의로움, 곧음, 수치심을 의미한다. 관중은 사유가 물질적으로 풍족해졌을 때 지켜진다고 보았다. 하지만 경제적/물질적만으로 백성을 다스리려 하면, 예기치 못한 상황(흉년,전쟁 등)이 발생하였을 때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진다. 그래서 관중은 목민의 안전장치로써 "제사"를 권장했다.
 
고대의 사후세상은 현재와는 다르게 현실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다. 살아서 농민계층이었다면 죽어서도 농민계층이고, 살아서 귀족계층이었다면 죽어서도 귀족계층인 것이다. 관중은 이러한 "제사","조상신"의 개념을 활용하여, 만약 후손들이 자신의 신분/직업을 지키지 않는다면 조상신들은 사후세계에서 고생을 하게되고 이는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화로 돌아오게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