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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거점 간첩단 사건==
[[1973년]] [[10월 4일]]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문리대 학생들에 이어 [[10월 유신]] 반대 데모에 나섰다. 경찰의 진압으로 법대생들이 체포·연행되어 구금된 것에 대해 교수회의에서 스승으로서 모른 체해서는 안된다며 "부당한 [[공권력]]의 최고 수장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장을 보내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국정원|중앙정보부]]에서 [[유럽 간첩단 사건]]의 수사 협조를 요청하자 [[10월 16일]]에 중앙정보부에 근무하고 있던 최종선과 함께 두 형제가 읏으며웃으며 자진출두하였으나 그로부터 3일 뒤인 [[10월 19일]]에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 [[김치열]]은 [[10월 25일]]에 최종길이 "간첩혐의를 자백하고 중앙정보부 건물 7층에서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하였다.<ref>이후 김치열은 한두달 사이에 검찰총장, 법무장관으로 급속 승진한다.</ref>
 
그러나 [[1974년]] [[12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전기고문]]에 의한 [[타살]]을 사인으로 제시했으며, [[1975년]]에는 [[쾰른 대학교]]의 [[게르하르트 케겔]] 교수 등이 [[대한민국 외무부|외무부]]에 진상규명을 촉구하였다. 이후 지속적인 진상 규명 촉구가 있었으며, [[1988년]] [[10월 6일]]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서울지방검찰청]]에 재수사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10월 18일]], 검찰은 당일자로 공소시효가 만료하였으며 “타살됐다는 증거도, 자살했다는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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