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정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94 바이트 추가됨 ,  1년 전
편집 요약 없음
* [[정현조]](鄭顯祖, 1440년 ~ 1504년) : 정인지의 아들. 1455년(세조 1) 세조의 딸 의숙공주(懿淑公主)와 혼인하여 하성위(河城尉)에 봉해졌다. 1458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1468년 익대공신(翊戴功臣) 2등에 책록되고 수록대부 하성군에 봉하여졌으며,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1등에 책록되고 하성부원군(河城府院君)에 진봉되었다. 시호는 편정(褊玎)이다.
* [[정여창 (조선)|정여창]](鄭汝昌, 1450년 ~ 1504년) : 145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495년(연산군 1) 안음현감(安陰縣監)에 임명되었다. 1498년 무오사화 때 종성(鍾城)으로 유배, 1504년 죽은 뒤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되었다. 시호는 문헌(文獻).
* [[정운]](鄭運, 1543년 ~ 1592년) :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공을 세우고, 부산포해전에서 우부장(右部將)으로 선봉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 [[정운]](鄭運, 1543년 ~ 1592년) : 임진왜란 때 무신
* [[정봉수]](鄭鳳壽, 1572년 ~ 1645년) : 정묘호란 때 의병장
* [[정충신]](鄭忠信, 1576년 ~ 1636년) : [[전라도]] 나주의 노비였으나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을 따라 종군하다가, 16세의 나이에 왜군의 포위를 뚫고 의주까지 가서 권율의 장계를 선조에게 올렸다. 이러한 의기를 기려 백사 이항복이 그에게 충신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조선 선조]]는 정충신을 노비에서 면천을 시켜주었다. 이후 무과에 급제한 뒤 1621년 만포첨사(滿浦僉使)로 국경을 수비하고, 1623년 안주목사 겸 방어사가 되었다. 1623년(인조 1) 안주목사로 방어사를 겸임하고, 다음해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전부대장(前部大將)으로 이괄의 군사를 황주와 서울 안산(鞍山)에서 무찔러서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으로 금남군(錦南君)에 봉해졌다. 이괄과 친분이 두터웠던 그가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결백을 나타내기 위하여 성을 버리고 달아나 문회(文晦) 등의 고발로 체포되었으나 은혜를 입고 풀려났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부원수를 지냈고, 1633년 조정에서 후금(後金)에 대한 세폐의 증가에 반대하여 후금과의 단교를 위하여 사신을 보내게 되자 김시양(金時讓)과 함께 이를 반대하여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와 이듬해 포도대장·경상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ref>[http://people.aks.ac.kr/front/board/person/viewPersonStatus.aks?bbsCode=55&isEQ 노비에서 최고 무신이 된 정충신]</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