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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스의 뇌는 보존되어서, 루돌프 바그너({{llang|de|Rudolf Wagner}})가 연구하였다. 뇌의 무게는 1.492kg, 대뇌의 부분이 219.588cm<sup>3</sup>이었고, [[회백질]]이 많이 발달되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20세기]] 초에 그의 천재성을 설명하는 증거로 제시되었다.
 
 
완벽주의자에 대단히 열심히 일하는 학자였다. [[아이작 아시모프]]에 따르면, 어떤 문제와 씨름하던 중, 그의 아내가 아파서 죽어간다는 말을 듣자, "그녀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전해 주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월도 더닝턴(Waldo Dunnington)의 《가우스, 과학의 타이탄》에도 짧게 소개되어 있지만, 더닝턴은 이 일화의 진위가 의심스럽다고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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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따르는 젊은 수학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드물게 소수의 수학자들과 협력 작업을 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오만하고 엄격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학생도 적은 수만을 받았는데, 그나마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학회는 [[1828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모임에만 한 차례 참석하였다. 그런 중에서도 그의 제자 가운데 [[리하르트 데데킨트]], [[베른하르트 리만]], [[프리드리히 베셀]] 등은 당대 가장 뛰어난 수학자로 성장하였다. 가우스는 우편으로 교류하였던 [[프랑스]]의 여성 수학자 [[소피 제르맹]]의 능력을 인정하며, 명예 학위를 수여하려 했다.
 
 
가우스는 [[아르키메데스]], [[아이작 뉴턴]]과 함께 세계 3대 수학자들 중 한 명이 됐고, 오늘날에는 "수학의 왕자"라는 타이틀로 굉장히 유명하다. 그는 수학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큰 기여를 했다. 특히, 정수론을 수학의 중요한 분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