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Choboty (토론 | 기여)
잔글 영어판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남중국해
태그: m 모바일 웹
8번째 줄:
마카오는 본래 [[광둥 성]] 샹산 현(香山縣, 현 [[중산 시]] 일부)였다.
 
[[1553년]]([[명나라]] 가정(嘉靖) 31년), [[포르투갈]]은 현지 관리에게 화물이 젖어서 육지에서 말리고 싶다는 구실로 [[뇌물]]을 주고 마카오 체류를 인정받았고, 4년 뒤부터는 뇌물을 매년 건네면서 본격적으로 마카오에 눌러앉게 되었다. [[1572년]]부터는 [[명나라]] 조정도 매년 500냥의 지대(地代)를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포르투갈인]]의 마카오 거주권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그 계기는, 포르투갈이 현지 관리에게 뇌물을 주는 자리에 우연히 조정에서 온 관리가 있었으므로, 부정(不正)이 발각되는 것을 두려워한 [[광둥 성]]의 관리가 받은 500냥을 부득이 [[국고]]에 납입했기 때문인 듯하다. [[해적]] 정벌을 원조한 공적으로 포르투갈인에게 마카오 거주권을 주었다는 설(說)은 [[18세기]]에 포르투갈인이 창작한 이야기이다.<ref>[[요시다 이치로]](吉田一郞), 世界飛び地領土研究会 - 마카오 [http://www.geocities.co.jp/SilkRoad-Lake/2917/china/macau.html]</ref> 처음 정착할 당시 포르투갈인이 [[도교 사원]]인 [[마쭈거]](媽祖閣) 근처에 살았는데, 현지인에게 그곳의 지명을 물으니 현지인은 사원의 이름을 묻는 것으로 착각하여 "마쭈거"라고 알려주었는데, 이를 잘못 알아들어 '''마카오'''라고 부른 것이 현재 이름이 되었다.
 
그 후 마카오는 [[금]], [[은]], [[도자기]], [[아편]] 등의 중개 무역과 [[기독교]] 포교의 기지로서 번영했다. [[포르투갈]]과 [[청나라]]가 체결한 [[1887년]] 리스본 의정서, [[1888년]] 청-포르투갈 통상 우호 조약에 따라 마카오는 정식으로 포르투갈령이 되었지만,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로 경영하면서 [[무역항]]은 쇠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