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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吳起, ? ~ [[기원전 381년]])는 중국 [[전국시대]]의 병법가이며,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본래 [[위 (춘추 시대)|위나라]](衛) 출신으로, [[증자 (사상가)|증자]]의 문하에 들어가서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어머니의 장례에 참여하지 않은 일로 인하여 파문당한 후에는 병법을 공부하여 장군이 되었다. 이후 [[노나라]](魯) · [[위 (전국 시대)|위나라]](魏) · [[초 (춘추전국)|초나라]](楚)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관직에 올라 전공을 거두어 명성을 떨쳤고, 최후에는 초나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와 관련된 대표적인 저작으로 《[[오자병법]]》(吳子兵法)이 전해진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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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문후 시대 ====
노나라 군주에게 버림받은 오기는 당시 [[위 (전국)|위나라]](魏)의 군주였던 [[위 문후]]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섬기고자 하였다. 위 문후가 신하인 이극(李克)에게 오기가 어떤 사람인지 묻자, 이극은 오기에 대하여 "비록 욕심이 많고 여색을 밝히지만 용병에 있어서는 [[사마양저]]도 따라잡을 수 없다."라 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위 문후는 오기를 등용하여 장군으로 삼았다. 장군이 된 오기는 [[진 (영성)|진나라]](秦)를 공격하여 5개 성을 빼앗았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이후 오기가 유생(儒生)의 차림새를 갖추고 병법을 논하고자 위 문후를 배알하였는데, 위 문후는 일부러 오기의 앞에서 "과인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소."라 말하며 속내를 감추었다. 그러나 오기는 이미 위 문후가 몰래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그 앞에서 병법을 논하였다. 그의 언변에 감탄한 위 문후는 친히 자리를 마련하여 부인으로 하여금 오기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베풀었다.<ref>《오자병법》 1편 도국</ref>
 
위 문후는 오기가 용병에 능하고 청렴하며 공정하여 병사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는 그를 서하(西河)의 태수로 삼았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 ; 《오자병볍》 1편 도국</ref> 이후 오기는 제후국들과 76회에 달하는 싸움을 치러서 64회의 대승을 거두고 나머지도 모두 무승부로 끝을 냈다. 오기의 공로로 인하여 위나라는 사방으로 1천 리에 달하는 영토를 얻었다.<ref>《오자병법》 1편 도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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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생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