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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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k이라는 애칭을 사용하였던 에셔는 1898년 6월 17일 네덜란드의 Leeuwarden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의 집은 오늘날 Princessehof Ceramics Museum으로 이용된다. 그는 토목기사 George Arnold Escher와 그의 두 번째 아내 Sara Gleichman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수학과 과학을 잘 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의 과학적 태도와 관찰력을 물려받았다. 1903년 Arnhem으로 이사가 그 곳에서 1918년까지 살았고 초, 중학교를 다녔다. 어릴 때 그는 병약한 아이였으며 7세에 입학한 학교에서 2학년 때 유급했다. 그림에는 소질이 있었으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이후 목공일과 피아노를 13세까지 배웠다. 고등학교 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였으며, 그의 재능을 인정한 미술 교사는 그에게 판화를 가르쳤다. 1919년에 Haarlem 건축, 장식학교에 입학하여 건축을 잠시 배웠으나 그의 작품을 본 담당 교수의 권유로 그래픽 아트에 전념하게 된다. 그의 스승이었던 Samuel Jessurun de Mesquita와 오랜 기간 동안 친구로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2년 학교를 떠나 그림 그리는 것과 목판 제작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 후기 ===
1922년은 그에게 중요한 해이다. 그는 이때 이탈리아(Florence, San Gimignano, Volterra, Siena, Ravello)와 스페인(Madrid, Toledo, Granada)을 여행하였다. 이탈리아의 도시 외곽의 풍경과 스페인의 그라나다(Granada)에서 14세기 이슬람 궁전인 [[알함브라]]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이후 그는 1936년에 한 번 더 알람브라를 방문한다. 그는 알람브라 궁전의 평면 분할 양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는 훗날 “(알람브라 분할 양식은) 지금껏 나를 사로잡아온사로잡아 온 가장 풍부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고 밝히고 있다. 그는 그 이후 몇 년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이탈리아에서 Jetta Umiker를 만나 1924년 결혼하여 로마에 정착하였으나, 1934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가 득세하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을 견디지 못해 이탈리아를 떠나게 된다. 그의 아들 Giorgio Arnaldo Escher는 로마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할아버지 이름을 받았다. 이후 스위스의 Château-d'Œx로 이사가 2년간 그 곳에서 지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풍경을 좋아했던 그는 스위스에서는 그다지 행복하게 지내지 못 하였다. 1937년에 벨기에의 Brussels 근처의 작은 도시인 Ukkel로 이사하였다. 세계 2차대전으로 인해 1941년 1월 네덜란드의 Baarn으로 다시 이사, 그 곳에서 1970년까지 살았다. 에셔의 유명한 작품은 이 시기에 대부분 그려졌다. 흐리고 춥고 습한 네덜란드의 날씨가 그를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1962년은 유일하게 작품이 없는 해인데 그것은 그가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1970년 Laren에 있는 Rosa Spier로 이사하여 남은 여생을 그의 작업실에서 보냈고 73세의 나이로 1972년 3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 작품의 시대별 흐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