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당강 전투 (93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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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정 ==
[[938년]] 남한의 황제는 유홍조가 지휘하는 수군을 이끌고 침공하게 했다. 황제 자신도 군대를 海門(광시 성 백백현)에 이끌고 유홍조에 가세했다. 오권은 대라성(大羅城, 하노이)으로 행진행군하여 끼에우꽁띠엔(교공선, 矯公羨)을 잡아 살해처단하고, 침략군에 대비한 준비를 했다.
 
박당은[[박당강]]은 일반적으로 ‘숲의 강’이라고 불렸고, 이것은 양쪽 언덕 특히 좌안 측이 숲이었기 때문에 불렸던 명칭이다. 해발이 낮고 경사도 적었기 때문에 [[조수간만]]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장소였다.
 
오권은 병사와 백성을 시켜 숲에서 수천 개의 큰 나무를 베어내고, 그 앞을 깎아 철로 뒤덮은 말뚝을 하구 근처의 요소에 박아두었다. 말뚝이 물속에 잠기게 하고, 진지 양쪽에서 군대를 매복시킨 것이다.
 
[[938년]] 가을, 유홍조가 지휘하는 남한 수군이 하구에서 침공해 왔다. 오권은 [[만조]] 시에 작은 배를 미끼로 써서 박당 하구를 거슬러 올라왔다. 그후 썰물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이것을 신호로 복병도 다 같이 반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남한군은 대항하지 못하고 바다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수면에서 튀어나온 말뚝으로 인해 탈출을 할 수 없었다.
 
남한군은 혼란에 빠졌고, 배는 말뚝에 의해 분쇄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오권 군은 작은 배를 이용해 빠른 기동으로 접근하여 백병전을[[백병전]]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남한군은 배를 버리고 도주하였고, 이 전투에서 절반 이상의 병력을 잃었으며, 유홍조도 목숨을 잃었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