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형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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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왕 5년(기원전 202년), 경내가 어지러워져 싸울 기력을 잃은 서초패왕이 한왕과 화친을 맺고 돌아가고, 한왕은 약속을 깨고 서초를 무찌르고자 추격해 고릉에 이르렀다.<ref name="s8">위와 같음, 권8 고조본기 {{위키문헌언어-줄|zh|史記/卷008|사기 권8 고조본기제8}}</ref> 이때 명령을 받아 [[화이허]]를 건너 서초령 수춘에 이르러, 서초의 [[대사마]] [[주은]]을 꼬드겨 서초에 모반하게 했다. 주은의 보좌를 받아 구강군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영포]]와 합류해, 마침내 해하에서 한나라 본대와 합류해 항우를 공격했다([[해하 전투]]). 한왕의 명령으로 구강의 군사를 거느리고 [[태위]] [[노관]]과 함께 항우가 세운 열여덟 제후 중 마지막까지 한왕에게 투항하지 않은 임강왕 [[공위]]를 공격했다. 공위가 죽은 후 구 임강국의 판도를 [[남군 (중국)|남군]]으로 개편했다.<ref name="s51"/>
 
고조 6년(기원전 201년), [[초 (전한)|초]]왕 [[한신 (한나라회음후)|한신]]을 모반 혐의로 잡아들이고 봉국을 몰수하면서, 구 한신령 [[초 (전한)|초나라]] 영토 중 회수 동쪽의 52성을 받아 만들어진 [[오 (전한)|형나라]]의 왕이 되었다. 서울은 오(吳)에 두었다. 한편 [[유교 (초원왕)|유교]]가 나머지 회수 서쪽의 36성을 받아 초왕이 되었고, 이때부터 비로소 전한의 황족 유씨가 왕으로 세워졌다.<ref name="s51"/><ref name="s17">위와 같음, 권17 한흥이래제후왕연표제5 {{위키문헌언어-줄|zh|史記/卷017|사기 권17 한흥이래제후왕연표}}</ref>
 
고조 11년(기원전 196년), [[회남 (전한)|회남]]왕 [[영포]]가 모반하고 형나라로 쳐들어오자, 맞서 싸우고 져 달아나다 영포의 군사에게 살해당했다. 형나라는 회남나라에 병탄됐다. 영포의 난이 진압된 후 형나라를 폐하고 군을 설치했다가, 이듬해 국명을 오나라로 고치고 다시 왕국을 두어 [[유비 (오왕)|유비]]를 왕으로 봉했다.<ref name="s51"/><ref name="s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