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연고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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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항, 부산, 서울은 리그 참가 당시 최초 연고지와 공식 지역 연고제가 시행된 1987시즌의 연고지가 동일하지만 제주는 최초 연고지 서울+인천+경기에서 1984시즌 서울로 연고지를 변경했다가 1987시즌부터 다시 인천+경기로 연고지를 변경하였으며 울산은 최초 연고지 인천+경기에서 1986시즌 할렐루야의 해체로 주인이 없어진 강원 연고를 흡수하여 인천+경기+강원 연고 구단이 되었다.<ref name=autogenerated2 />
 
(4) 1987년–1989년 광역지역연고제 시행 기간에 연고지역을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충청 이렇게 표기를 했지만 사실상 연고지는 부산, 대구, 인천, 대전이었다.{{출처|날짜=2017-03-29}}대전이었는데 하지만1987년에는 1982년부터주말 지역연고제를2연전이 실시했던새롭게 프로야구에 이미 대도시 연고지들을 선점 당하였고 당시 경기장들의 사정으로 인해 경기를 많이 가지지 못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사실상 연고지였던 대도시들에서 연고지 정착을 하기 어려워 대구+경북의 포항제철, 인천+경기의 유공, 충청의 럭키금성은 주연고지인 대구, 인천, 대전을 포기하기에 이른다.도입됐다<ref>{{출처|날짜=2017-03-29}}뉴스 인용
| 제목 = 油公(유공),럭키금성에 설욕
| url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33000209209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3-30&officeId=00020&pageNo=9&printNo=20150&publishType=00020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 쪽 =
| 날짜 = 1987-03-30
| 확인날짜 = 2019-04-06
}}</ref>.
하지만 1982년부터 지역연고제를 실시했던 프로야구에 이미 대도시 연고지들을 선점 당하였고 당시 경기장들의 사정으로 인해 경기를 많이 가지지 못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사실상 연고지였던 대도시들에서 연고지 정착을 하기 어려워 대구+경북의 포항제철, 인천+경기의 유공, 충청의 럭키금성은 주연고지인 대구, 인천, 대전을 포기하기에 이르며 급기야 선수 부상 등의<ref>{{뉴스 인용
| 제목 = 프로축구선수들 週末(주말)2연전'울며 겨자먹기'
| url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50700209205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5-07&officeId=00020&pageNo=5&printNo=20181&publishType=00020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이종세
| 쪽 =
| 날짜 = 1987-05-07
| 확인날짜 = 2019-04-06
}}</ref> 문제점이 생기자 1987년에 시행된 주말 2연전은 1년 만에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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