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센이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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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인 보강을 단행하는 한편 토박이 선수들을 방출하는 경우도 많았다. 제1차 감독 시절에는 나카오 다카요시, [[오시마 야스노리]]나 [[우시지마 가즈히코]], [[히라노 겐]], [[야마다 가즈토시]], [[오토 시게키]](제2차 감독 시절 주니치에 복귀), 제2차 감독 시절에는 [[사카이 다다하루]], [[니무라 도루]], [[마에하라 히로유키]], [[시미즈 마사지]], [[다이호 야스아키]](앞에서 말한 구지 데루요시와의 맞트레이드 상대였지만 3년 뒤에 복귀), [[야노 아키히로]], [[가도쿠라 겐]], [[쓰루타 야스시]], [[다네다 히토시]] 등을 타 구단에 방출했다. 이들의 방출로 인해 특히 제1차 감독 시절의 주력 선수로는 [[야자와 겐이치]], [[우노 마사루]], [[가와마타 요네토시]]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이 방출되었고 그 중 야자와는 호시노의 감독 취임과 동시에 은퇴했다(부임 1년째의 시범 경기에서 은퇴 경기로 치러졌다).
 
선수가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면도 있었다. 1987년에 [[고마쓰 다쓰오]]가 최다승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고 있던 당시에는 소화시합 3경기에서 5회까지 던지게 하여 승수를 쌓은 끝에 타이틀을 획득시켰다. 1991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최우수 평균 자책점|최우수 평균 자책점]] 타이틀이 걸려 있던 [[이마나카 신지]]를 이미 우승이 결정된 히로시마와의 [[더블헤더]] 첫 번째 경기에 완투시키고 두 번째 경기에도 등판시켰다. 1996년에는 [[야마사키 다케시]]에게 [[일본 프로 야구 최다 홈런|홈런왕]] 타이틀을 획득시키기 위해 1개 차이로 쫓고 있던 [[마쓰이 히데키]]를 모든 타석에 [[고의사구]]로 내보내는 작전을 취했다. 요미우리 팬은 물론 주니치 팬들에게서조차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호시노 본인은 “마쓰이가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면 홈런 갯수가개수가 같더라도 야마사키는 주목받지 못하고 지명도가 높은 마쓰이의 것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1999년에는 이미 주니치의 우승이 결정되면서 일본 시리즈 출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최다승을 1개 차이로 쫓고 있던 [[노구치 시게키]]를 시즌 최종전(대 야쿠르트전)에 4일 쉬고 등판시켰다. 또 ‘MVP는 우승 구단에서’라고 기자에게 어필하여 당시 투수 부문에서 우수한 성적을 남긴 [[우에하라 고지]]에게 향하는 표를 견제했다.
 
1987년 6월 11일, [[구마모토현]] [[후지사키다이 현영 야구장]]에서 열린 요미우리전에서 [[미야시타 마사미]]가 상대 타자 [[워렌 크로마티]]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지자 이에 격분한 크로마티가 미야시타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러 양팀 선수들이 마운드에 난입해 [[벤치 클리어링]]으로 번졌다. 당시 호시노는 요미우리의 [[오 사다하루]] 감독에게 주먹을 내밀며 ‘도발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며 싸움을 걸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훗날 TV 방송에서 그 당시의 일이 화제가 되었는데 주먹을 내민 것은 “주먹으로 때릴 것은 없잖아요?”라는 ‘항의의 의미’였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