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메세니아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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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정 ==
스파르타의 왕 [[알크메네스]]에 따르면 [[암페이아]] 공략까지는 작은 교전만 이어졌다. 스파르타는 암페이아 공략 이후 4년 동안 다른 도시를 공격하는 것도 모조리 실패했다. 두 차례 회전을 치룬 이후 메세니아는 [[전염병]]에 시달렸고, 이것으로 인해 메세니아의 전황은 악화되었다. 그래서 메세니아 군은 요새화된 [[이토미 산]]에 진을 쳤다. 그로부터 6년째에 스파르타는 이토미 공략을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그때의 전투로 메세니아 왕 에우파에스가 전사했지만 전투는 큰 댓가를대가를 치루며 끝났다. 그 후, 메세니아 인은 [[델포이]]에 신탁을 청하여 왕실의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 승리할 수 있다는 답을 얻었고, [[아리스토데모스]]는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쳤다. 이에 따라 [[아리스토데모스]]는 메세니아 왕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승리의 주역 아리스토데모스는 딸의 망령에 시달리고 딸의 무덤 앞에서 자살했다. 우수한 지휘관을 잃어버린 메세니아는 불길한 예언이 적중되자 경악을 했고, 사기가 떨어졌다. 한편 스파르타는 장기적인 공성전으로 전략을 바꾸고, 그로 인해 메세니아는 굶주림에 시달렸다. 궁지에 몰린 메세니아 군은 결사의 반격을 시도했지만, 도리어 패배를 당했다. 결국 그들은 메세니아 북부에서 철수했고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