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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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한반도를 점령한 [[일본 제국]]은 한국 주재 러시아인들에게 강제 출국을 명령했고 그중에는 선교회도 포함되어 있었다.
 
러일 전쟁 종전 후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 사업은 [[1906년]] 한반도에 입국한 대수도사제 파벨 이바놉스키(Павел Ивановский)에 의해 재시작됐다. [[1906년]]에서 [[1912년]]까지 한반도에 체류하던 파벨 이바놉스키(Павел Ивановский) 신부는 [[러일 전쟁]] 당시 전몰한 러시아 장병을 추모한다는 명분으로 성당 건립을 추진하려 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무산된 데다가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가 공산화하면서 정교회가 박해에 처하게 돼, 러시아 정교회는 조선에 있는 정교회를 더 이상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1922년]] [[2월 26일]] 러시아 정교회 조선 선교회는 [[일본 정교회]]의 러시아인 수장 세르게이세르기 티호미로프 대주교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교회 교리를 교습받은 제1기생 중에서 강탁(요한) 신부가 배출되어 최초의 한국인 정교회 성직자가 되었다. 강탁(요한) 신부는 1912년 일본 정교회의 도쿄 대주교 세르게이에세르기에 의하여 사제로 서품받았다.
 
=== 해방과 한국 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