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국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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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과 [[미국]]의 관계가 점점 악화되면서 1948년 3월 영국, 프랑스, 미국 3개 연합국은 회담을 가져 3개 연합국 점령지역을 하나로 합치고 흔히 [[서독]]으로 알려진 독일연방공화국 창설을 승인했다. 한편 동쪽의 소련 점령 지역도 흔히 [[동독]]으로 알려진 독일민주공화국이 되었다. 서독이 새 헌법을 만들 준비를 하는 동안, 1948년 8월 [[헤렌킴제]]에서 국가 상징을 무엇으로 할지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동독과 재통일 하기 전까지는 국기를 만들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국기를 정하기로 결정했다. 이 움직임은 1946년 11월 동독의 [[독일 통일사회당]](SED, 통사당)이 헌법을 제안하면서 가속화되었으며,<ref>{{서적 인용 |last=Friedel |first=Alois |title=Deutsche Staatssymbole |language=독일어|trans_title=German state symbols |year=1968년 |publisher=Athenäum-Verlag |isbn=978-3-7610-5115-3}}</ref> 여기서 흑적금의 독일 공화국을 나타내는 색상을 국기로 하기로 결정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documentarchiv.de/ddr/1946/sed-verfassungsentwurf-ddr.html |title=SED-proposed constitution of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 |work=documentArchiv.de |date=1946년 11월 14일 |accessdate=2008년 2월 24일}} (in German)</ref>
 
새로운 서독 국기에 대해 많은 제안이 올라왔지만,<ref name="proposals">{{웹 인용 |url=http://www.fotw.net/flags/de!1949.html |title=Proposals 1944–1949 (Germany) |work=[[Flags of the World]] |accessdate=2016년 3월 2일 }}{{깨진 링크|url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0430235649/http://www.fotw.net/flags/de!1949.html |보존날짜=2017년 4월 30일 |깨진링크=예 }}</ref> 최종 경선에는 둘 다 흑적금 색을 사용한 다른 형태의 국기 2개로 좁혀졌다. [[독일 사회민주당]](SPD, 사민당)은 기존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기를 재도입하자고 주장했고, 반대로 [[독일 기독교민주연합]]/[[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CDU, 기민련/CSU, 기사련) 및 [[독일당 (1947년)|독일당]] 등 보수정당은 의회 위원회(Parlamentarischer Rat)의 위원이자 독일의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의 미래 고문이었던 어니스트 비르머가 제안한 디자인을 지지했다. 비르머는 그의 형제이자 [[7월 20일 음모]]에 관여했던 조시프 비르머가 만들었던, 흑적금 색깔에 [[스칸디나비아 십자]]가 그려진 1944년 "저항기" 디자인을 변형한 형태였다.<ref name="proposal1944">{{저널 인용 |last=Rabbow |first=Arnold |date=May–August 1983 |title=A Flag Against Hitler. The 1944 National Flag Proposal of the German Resistance Movement |journal=Flag Bulletin |volume=100}}</ref> 바이마르 공화국과 새로운 서독 정부 사이의 연속성을 주창하기 위해 최종적으로는 삼색기가 결정되었다. 1949년 5월 23일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을 제정하면서 흑적금 삼색기가 서독의 공식적인 국기가 되었다.<ref name="constitutionDE"/>
 
1955년에는 프랑스가 장악했던 [[자르 보호령]]이 서독에 합병할지에 대한 투표를 열었다.<ref>{{웹 인용 |url= http://www.ena.lu/saar-referendum-23-october-1955-022100041.html |title=The Saar referendum |work=European Navigator |date=1955년 10월 23일 |accessdate=2016년 3월 2일}}</ref> 1947년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분리되어 독립한 이래, 자르 보호령은 [[자를란트 주의 기|청적 배경의 스칸디나비아 십자가 그려진 기]]를 사용하고 있었다.<ref>{{웹 인용 |url=http://www.documentarchiv.de/de/saar/saarland47-index.htm |title=Constitution of the Saarland |work=documentArchiv.de |date=1947년 12월 15일 |accessdate=2016년 3월 2일}} See Article 61. (in German)</ref> 자르가 서독의 한 주로 병합되면서 1956년 7월 9일 자를란트에 흑적금 국기에 이날 새로 만들어진 [[자를란트의 문장]]이 그려진 기를 주기로 채택했다.<ref>{{언어링크|de}} Government of the Saarland (9 July 1956) {{lang|de|''Gesetz Nr. 508 über die Flagge des Saarlandes''}} and {{lang|de|''Gesetz Nr. 509 über das Wappen des Saarlandes''}}</ref> 이 기는 1957년 1월 1일 서독의 [[자를란트주]]로 편입되면서 공식적인 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