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과 여걸민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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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오는 서구 열강의 개방 요구에 맞서서 대원군은 천주교 신부들을 잡아서 참형에 처하고 서구의 개방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며 쇄국정책을 펼치게 되고 경복궁 중건을 통해서 백성들을 동원시키게 되고 통행세를 보부가하면서 백성들의 원성을 듣게된다. 이를 알게 된 민비는 대원군을 견제하기 위해 고종을 조종하면서 권력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여기에 대원군이 종묘에 묻어두었던 은괴를 파내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대원군에 대한 경계와 갈등을 빚게되고 대원군 역시 며느리에 대한 배제와 증오를 가지며 극도로 경계한다.
 
이 때 조승구는 형을 죽인 대원군의 가마를 습격하여 대원군을 살해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여 대원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게 된다되고 대원군은 대왕대비 조씨로부터 은괴를 파내려는 문제에 대해 문책을 받는다.
 
그러던 중에 [[별기군]]이 신설되고 구식군대들이 천대를 받는 가운데 선혜청 [[민겸호]]의 훈령에 따라 구식군대에게 쌀을 배급하게 되었는데 썩은 쌀에 모래와 겨가 섞여있는 것에 구식군대가 크게 분노하면서 [[임오군란]]이 터지게 되고 구식 군인들은 대원군의 친형이자 민비를 지지하는 [[흥인군]]을 살해하고 일본 공사관을 부수고 일본인 거류민들을 붙잡아 학살하면서 민비를 백방으로 찾아다니다가 발견하였지만 조승구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충주목 장호원으로 은신하게 된다. 구식군의 호위를 받아 입궐한 대원군은 민비는 죽었다며 고종에서 국상을 선포할 것을 요구하지만 민비가 청군을 부르게 되면서 청의 사신단에 의해 유배생활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