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고구려-당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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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년]], 태원 유수 [[당 고조|이연]] 역시 반란에 가담하였다. 이연은 수의 수도인 [[장안]](長安)으로 들어가, 황태손인 [[수 공제|양유]]를 황제로 잇게 했다. 또한, 자신은 수의 대승상이 되었다. 때마침 수 양제가 강도에서 그의 시위장이자 [[우문술]](宇文述)의 아들인 [[우문화급]](宇文化及)과 [[우문지급]](宇文智及) 형제에게 암살되자, 이연은 국호를 [[당나라|당]](唐)으로 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으며, 공이 컸던 둘째 아들 [[이세민]]을 진왕(秦王)에 봉했다.
 
이세민은 또한 각지에서 당나라를 따르지 않는 지방의 호족 세력과 반란군들을 모두 제압하고, 624년 중국을 재통일 하였다재통일하였다.
 
이후 [[당 태종|이세민]]의 인기가 높아지자 이를 불안하게 여긴 형 황태자 [[:zh:李建成|이건성]](李建成)과 막내동생 제왕(齊王) [[이원길 (603년)|이원길]]은 이세민을 죽일 모책을 세웠고, 급히 자신들 계파의 대신들을 불렀다. 이건성파 중에는, [[위징]](魏徵), 왕규, 배적(裵寂) 등이 있어, 이세민 제거 작전을 세운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챈 이세민은 처남 [[장손무기]](長孫無忌)와 장군 이정(李靖), [[이세적|서세적]](徐世勣) 등을 이용해, 도리어 역으로 그들을 이용하려 했다.
 
[[626년]] [[7월 2일]], 이세민은 부황 이연에게, 형제들이 자기를 죽이려 모함한다 아뢰었고, 이연은 그들을 장안의 궁성으로 불렀다. 그들이 궁성의 현무문으로 들어온 순간, 매복한 이세민의 군사들이 이건성과 이원길에게 화살을 쐈고, 그 자리에서 그들은 살해당했는데, 이를 [[현무문의 변]]이라 한다. 3일 뒤에 이연은 할 수 없이 이세민을 황태자로 삼고, 2개월 뒤에 그에게 양위하였다. 이에 이세민이 9월 4일에 황제에 올랐으며, 이듬해에 연호를 정관(貞觀)이라 하니, 이가 바로 당나라 제2대 황제인 [[당 태종|태종]]이다. 태종은 630년 [[동돌궐]]을 제압하였다. 이에 [[거란]]과 [[해 (부족)|해]], [[습]], [[실위]]가 당에 스스로 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