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혜문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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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촉의 병합 ===
또 기원전 316년에는 관중(진의 본토)의 배후지인 파촉을 병합한다.이 지역에는 [[싼싱두이|삼성퇴문화]](三星堆文化)를 근본으로 한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가 번창하고 있었고, 이 나라는 주나라에 복속하고 있었다. 혜문왕은 촉 정벌 전에 장의와[[장의 사마착(司馬錯전국)|장의]]와 [[사마조 (전국)|사마조]]에게 촉을 취해야할 것인가를 자문했다. 장의는 촉을 취하는 것에 반대해 나라의 중앙인 주나라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사마착은사마조는 촉을 취하고 배후지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혜문왕은 사마착의사마조의 의견을 채용하고 촉을 정벌하여 큰 곡창지대를 얻게 되었다. 또한 장강 하류에 있는 초에 대하여 강을 사용한 군대의 이동이 가능하게 되어, 이전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 초나라 토벌과 한중군 설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