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신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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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호동]](好童) 모본왕(慕本王)
|부왕 = [[유리명왕]](瑠璃明王)
|모후 = 왕비후궁 송씨(王妃後宮 松氏)
|왕비 = [[해씨 부인]]
|전임자 = [[유리명왕]](瑠璃明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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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즉위 이전 ===
[[무휼|대무신왕]]은 [[유리명왕]]의 셋째 아들로 다물후 [[송양]]의 딸인 유리명태왕 제2왕후후궁 [[송씨]]의 소생이다. [[유리명왕]]은 6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첫째인 도절(都切)은 이미 요절하였고, 둘째 [[해명 (고구려)|해명]](解明)은 황룡국(黃龍國)왕이 선물한 활을 부러뜨린 일로 자살하였으며, [[유리명왕]]이 특히 아끼던 여진 왕자 역시 요절하였다. 그리하여 유리왕은 탐탁치 않았으나, 그가 갑자기 죽어 셋째인 [[무휼]]이 왕위를 이어받았고 총명한 탓에 보위 등극하자마자 친정을 하였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대무신왕의 동생 고추대가 재사의 아들 궁이 대무신왕의 아들 [[모본왕]]을 대신하여 왕으로 추대되었다 한다. 그러나 후한서의 기록대로 한다면 [[태조대왕]]은 대무신왕의 후손이 된다. [[광개토대왕릉비]]에도 광개토대왕이 [[주몽]]-유류왕([[유리명왕]])-대주류왕을 이어 17대손이라 하여 [[광개토대왕]]의 직계 조상이라 기록했다.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한국의 역사가 [[신채호]]는 [[태조대왕]]을 대무신왕의 3대손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