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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초기 생애 ===
오기의 초기행적은 주로 《[[사기 (역사서)|사기]]》 손자오기열전 · 《[[한비자]]》 등의 기록에 전해지는데, 기록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른 부분이 많아서 정확한 것을 알기 어렵다. 다만 양측의 기록을 종합해 볼 때에 오기는 본래 [[위 (춘추 전국)|위나라]](衛) 사람이었으나 어떤 사정으로 인하여 군주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고향을 떠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기 (역사서)|사기]]》 에 따르면 오기는 본래 위나라(衛) 사람으로, 젊은 시절의 오기는 천금(千金)에 달하는 가산을 저축해둔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는 돈으로 관직을 얻으려 하였으나 가산만 탕진한채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오기를 비웃자, 오기는 자신을 비방한 30여 명의 사람을 죽이고는 도성 동쪽의 곽문(郭門)으로 빠져나가 달아났다. 이때 오기는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팔을 깨물며 맹세하기를, "저 오기는 경상(卿相)이 되기 전까지 위나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라 말하였다. 고향을 등지고 달아난 오기는 대학자였던 [[증자 (사상가)|증자]]의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하였다. 그러나 오기는 어머니가 죽었을 때에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 장사를 지내지 않았고, 그 일로 인하여 증자의 눈밖에 나서 결국 의절당하고 말았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한비자]]》에서는 오기가 고향을 떠나게 된 정황에 대하여 다른 기록을 전한다. 그에 따르면 오기는 본래 위나라(衛) 좌지(左氏) 사람이었다. 하루는 오기가 아내에게 띠를 짜도록 하였는데 그 폭이 법으로 정해진 치수보다 좁았다. 이에 오기가 아내에게 띠를 고치도록 하자 아내는 알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띠를 고친 후에도 여전히 그 폭이 치수와 맞지 않았다. 오기가 화를 내자 아내는 처음에 베를 짤 때에 이미 그 정도 치수의 날실을 넣었기 때문에 고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오기는 아내와 이혼해버리고 말았다. 오기의 아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그 오빠가 이를 말리며 말하기를, "오기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법을 집행하는 것은 만승(萬乘)의 나라와 더불어 공을 이루고자 하는 것인데, 먼저 처첩을 대상으로 법을 실천한 후 밖에서 이루려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돌아갈 생각은 그만 두어라."라 하였다. 이혼당한 오기의 아내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는 위나라 군주의 신임을 받는 총신이었다. 아내의 동생은 군주의 힘을 빌어 오기에게 다시 아내를 받아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오기는 그대로 위나라를 떠나버리고 말았다.<ref>《한비자》 32편 〈외저설우상〉</ref>
=== 노나라에서 ===
그러나 노나라의 어떤 사람이 노나라 군주에게 오기가 마을 사람들을 살해하고 어머니의 장례식에 불참했던 일 등의 과거행적을 폭로하며 그의 심성이 잔인하다고 비방하였으며, 또한 위나라의 죄인인 오기를 등용한다면 노나라와는 같은 핏줄의 조상을 둔 형제국인 위나라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하여 노나라 군주는 오기에게 의심을 품더니 그를 쫓아내 버렸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ref>
《한비자》에서는 오기가 노나라를 떠나게 된 정황에 대하여 다른 기록을 전한다. 그에 따르면 노나라의 대부인 계손씨(季孫氏)가 노나라 군주를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오기는 노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오기에게 "지금 계손씨가 막 피를 보이고 있으니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라며 걱정을 표하자 오기는 노나라를 떠나 [[진 (희성)|진나라]](晉)로 가버리고 말았다.<ref>《한비자》 22편 〈설림상〉</ref> 여기서 말하는 진나라란, 곧 삼진(三晉) 중 하나인 [[위 (전국)|위나라]](魏)를 말한다. 또한 이 기록 외에는 계손씨에게 살해당했다는 노나라 군주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오기가 노나라를 떠나게 된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 위나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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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오기가 유생(儒生)의 복장을 하고 병법을 논하고자 위 문후를 배알하였는데, 위 문후는 일부러 오기의 앞에서 "과인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소."라 말하며 속내를 감추었다. 그러나 오기는 이미 위 문후가 몰래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그 앞에서 병법을 논하였다. 그의 언변에 감탄한 위 문후는 친히 자리를 마련하여 부인으로 하여금 오기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베풀었다.<ref>《오자병법》 1편 도국</ref>
위 문후는 오기가 용병에 능하고 청렴하며 공정하여 병사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는 그를 서하(西河)의 태수로 삼았다.<ref>《사기》 권65 손자오기열전 ; 《오자병볍》 1편 도국</ref> 이후 오기는 제후국들과 76회에 달하는 싸움을 치러서 64회의 대승을 거두고
==== 위 무후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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