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201번째 줄:
<b>통제사 이순신이 벽파정 아래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적장 마다시를 죽였다....<징비록></b>
 
[[징비록]]에는 벽파정 아래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고 적고 있다. [[난중일기]]에는 우수영 앞바다로 수군진을 옮겼기에 벽파진 아래에서(碧波津)해역에서 마다시가 죽은것은 기록상 오류가 있다. 그러나 [[선조실록]]처럼 [[장계]]에 의해서 기록을 했다면 벽파진으로 적었을 것으로 추정케 한다.
[[해남명량대첩비명량대첩비]]에도 "진도 벽파진 아래에 주둔하고 있다가 울돌목으로울돌목(鬱陶項)으로 들어가는 목에서목(項)에서 왜군을 크게 쳐부수었다." 라고 적고 있다. 언뜻보기에는 벽파진에서벽파진(碧波津)에서 해전이 발생한것으로 착각 하기 쉽다. 그러나 "아래"라는 글귀가 "임하도"일 가능성도 있다. 난중일기에는 벽파진에서 우수영 앞바다로 수군진을 옮겼으므로 벽파진 아래에 주둔을 했다는 말도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회본태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