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몽 드 푸아티에 공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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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제국]]의 [[비잔티움 황제 연대표|황제]] [[요한네스 2세]]는 [[제1차 십자군]]이후 십자군이 제국과 한 약속을 어긴 것을 비난하여 안티오키아의 복속을 요구했다. [[1137년]] 요한네스 황제는 안티오키아로 진격했고 결국 레몽은 제국과 협력을 약속하고 [[에데사의 조슬랭 2세]]등 십자군 가신들과 함께 [[시리아]]의 이슬람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요한네스는 얼마 안가 비잔티움으로 돌아가 버렸고 레몽은 다시 비잔티움에 반기를 들었다.
 
[[1442년]] 요한네스는 다시한번 안티오키아를 복속시키기 위해 원정을 나섰는데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고 레몽은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1144년]] 말, 새롭게 이슬람의 강자로 부상한 [[이마드 앗 딘 장기]]가 [[에데사 백국]]을 점령하고 안티오키아가 위험해지자 레몽은 그동안 적대적이었던 비잔티움 제국에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수밖에 없었다. 레몽은 굴욕적으로 직접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하여 요한네스 콤네누스의 뒤를 이은 [[마누엘 1세 콤네누스]]에게 충성을 서약하였다. 이에 마누엘은 안티오키아 공국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한편 에데사 백국의 함락으로 위기감을 느낀 유럽에서는 새로운 십자군이 제창되어 [[제2차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었다. [[1148년]] [[프랑스의 군주|프랑스 왕]] [[루이 7세]]와 그의 왕비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엘레오노르]]가 십자군의 일원으로 안티오키아에 도착했다.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는 레몽의 조카였는데 기록에 의하면 당시 레몽과 엘레오노르의 사이는 단순히 조카딸과 삼촌의 관계를 넘어선 부적절한 관계인 것으로 추측된다.<ref>존 쥴리어스 노리치,《비잔티움 연대기》제3권 P.198~199</ref> 레몽은 루이에게 이슬람의 시리아 거점인 [[알레포]]를 공격하자고 부탁했는데 루이는 예루살렘으로 먼저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예루살렘으로 가버렸고 급기야 십자군에서 발을 빼고 왕비 엘레오노르와는 이혼을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