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동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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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속성(俗姓)은 가(賈)씨로, 어려서 유교의 오경(五經)과 도가(道家)의 노장(老莊)의 학문에도 통달하였으며 나이 열세 살에 舅父외숙부 영호씨(令狐氏)를 따라 허(許)<ref>지금의 중국 허난 성(河南) 허창(許昌). </ref>, 낙(洛)<ref>지금의 중국 허난 성 뤄양(洛陽).</ref> 등지에서 유학하였다. [[354년]]에 남쪽으로 내려가 유생(儒生) 범선(范宣)을 찾아가려 하였으나 세상이 어지럽고 길이 끊겼다. 그때 [[도안 (동진)|도안]](道安)이라는 승려가 태행항산(太行恒山)에서 불교의 학문을 널리 펼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마침내 길을 돌려 그를 찾아가 만났고, 도안의 인격이나 넓은 학식에 탄복해 도안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문하에 있으면서 반야경(般若經) 등을 청해 들은 뒤에 출가를 결심하였다. 그의 나이 21세 때였다.
 
358년 혜원은 도안의 명을 받들고 형주(荊州)로 가서 축법태(竺法汰)를 찾아가 병문안하였고, 그곳에서 도항(道恒)의 「심무의」(心無義)에 대한 견해를 논파하였다. 나이 24세에 讲席에 올라서 장자의 견해를 인용해 불교의 实相义理를 설명하고 미혹한 것을 분별해 깨우치게 하였다고 한다. 361年년에는 도안을 따라 왕옥산(王屋山)으로 들어가 몇 년 동안 각지를 돌아다니다돌아다녔고 [[366년]]에야 양양(襄陽)에 머물렀다와서 20년을 주석하였다. 건원 14년(378년)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양양을 침공해 스승 도안이 태수 주서(朱序)에게 붙잡혀[[장안]](長安)으로 연행되고, 혜원도 스승과 헤어져 남쪽으로 내려왔고, 강남의 홍교(弘教)에 이르러 [[후베이 성]](湖北省)의 형주(荊州) 상명사(上明寺)로 옮겼다. 이때 도안의 나이 45세였다.
 
그뒤 [[장시 성]](江西省)의 [[주장 시|심양]](潯陽)에 이르러 여산으로 들어가 서림사(西林寺), 즉 훗날의 동림사(東林寺)에 주석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30년 동안 혜원은 한 번도 산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해당 사실을 토대로 창작된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