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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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은 또한 문명개화를 통해 실력을 닦는 것이 한국 독립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 문명개화론자이면서, 일본의 보호정치가 한국의 문명개화가 아닌 국권침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바로 무장투쟁의 선두에 나선 행동가라고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평했다.<ref name=ahn_99>[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0/23/2008102301666.html [안중근 의사 의거 99년&#93; "그는 100년 전부터 동북아 평화도시를 꿈꿨다"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봇이 따온 제목 -->]</ref>
* 안중근이 자신을 존경했던 일본인 간수 [[지바 도시치|지바]]에게 남긴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은 군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이라는 글귀는 현재 [[대한민국 국군]]의 표어 중 하나가 되었다.
* [[청산리 대첩|청산리 전투]]주역 [[김좌진]]은 안중근의 의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ref>[http://n.ccdailynews.com/sub_read.html?uid=228563&section=sc16 SBS, 다큐드라마 '김좌진 장군' 방송] 충청일보 2011/08/12</ref>
* [[김경천]]은 자신의 일기인 경천아일록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이는 안응칠씨라 한다 아 위대하다. 우리에게도 사람이 있구나!"라고 평가했다.
* [[국제태권도연맹]]에서는 '중근'이라는 틀을 정하여 태권도의 기본 품세를 연습하도록 하고 있다.<ref>윤형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53633 세계 태권도 수련생들, <중근틀> 익히며 안중근 배우다], 오마이뉴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