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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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세월호}}
 
세월호는 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의 [[하야시카네 조선]](林兼造船)<ref group="내용주">하야시카네 선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수 공장으로 다수의 조선인이 [[징용|강제동원]]되었던 [[:ja:川南工業|가와나미 공업]](川南工業) 후카호리 조선소(深堀造船所)를 전신으로 1965년 설립된 일본의 조선회사이다. 일본 조선업계의 불황에 따른 경영 악화로 1992년 [[타이완]]의 [[:zh:長榮集團|에버그린 그룹]](長榮集團)에 인수되어 초에이 조선(長栄造船)으로 개칭되었다가 2004년 다시 [[:ja:福岡造船|후쿠오카 조선]](福岡造船)에 인수되어 현재는 후쿠오카 조선 나가사키 공장이 되었다.</ref> 에서 건조한 여객·화물 겸용선(RoPax, [[로로선|로로선]])<ref>{{웹 인용|url=http://news1.kr/articles/1640557|제목=美전문가 "여객·화물 겸용선 위험취약...규정강화해야"|날짜=2014-04-19|확인날짜=2014-04-19}}</ref>이다. 일본 [[마루에이 페리]] 사에서 '페리 나미노우에'({{lang|ja|フェリーなみのうえ}})라는 이름으로<ref>[http://www.wakanatsu.com/photo/ferrynaminoue.html フェリーなみのうえ]</ref><ref group="내용주">[[대한민국]] 간혹 언론들이나 일본 자료에서 이 선박을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한 것으로 혼동한 경우가 많은데, 마루에이 페리사(당시 오시마운수)에서는 1994년 하야시카네선거에서 건조한 페리 나미노우에호(4대)를 청해진해운에 세월호로 매각 전, 2012년 미쓰비시 중공업 시모노세키 조선소에 새로운 페리 나미노우에호(5대)를 주문하였다. 신형 페리 나미노우에호(5대)는 현재 세월호가 된 페리 나미노우에호(4대)와는 다른 선박으로, 이전 페리 나미노우에호(4대)와 비슷한 모습을 가졌으나, 많은 부분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인터넷에 フェリー波之上 또는 Ferry Naminoue 라고 검색했을 때 미쓰비시 중공업 홈페이지에 게재된 나미노우에호는 세월호가 된 페리 나미노우에호(4대)가 아닌 신형(5대)이다. 결론적으로 하야시카네선거는 미쓰비시 중공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http://www.wakanatsu.com/photo/ferrynaminoue.html 세월호가 된 4대 나미노우에마루] [https://www.mhi.co.jp/products/detail/cruise_ship_naminoue.html 2012년 9월에 취항한 5대 나미노우에마루]</ref> 18년 이상 [[가고시마]]~[[오키나와현|오키나와]] [[나하]] 간을 운항하다가 2012년 9월 퇴역하였으며 청해진해운이 2012년 10월에 중고로 도입하여 선미쪽에 증축·개조 작업을 거친 후 2013년 3월부터 [[인천항|인천]]-[[제주항|제주]] 항로에 투입하였다.<ref name="newsis_3"/><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161626431&code=940202 침몰한 세월호, 1994년 일본서 건조], 경향신문, 2014년 4월 16일</ref><ref>[http://news.ichannela.com/society/3/03/20140416/62826514/1 침몰 세월호 20년 된 노후선…재작년 日서 도입] {{웨이백|url=http://news.ichannela.com/society/3/03/20140416/62826514/1 |date=20140416180046 }}, 채널A, 2014년 4월 16일</ref> 세월호의 이름은 "세상(世)을 초월(越)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ref>[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425500043 <nowiki>[서울신문]</nowiki> “구원파 교리 뜻 담아 세월호 이름지었다” 의혹…세월(歲月)호 아닌 세월(世越)호?], 서울신문, 2014년 4월 24일</ref>
 
세월호는 총 배수량 6,835톤에 전장 145m, 선폭 22m이고, 21노트의 속도로 최대 264 마일을 운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객 정원 921명에 차량 220대를 실을 수 있으며, 적재 한도는 3,794톤으로 되어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01&aid=0006865933&cid=984900&iid=1070061|저자=장성구 기자|출판사=[[연합뉴스]]|제목=여객선'세월호'는?|날짜=2014-04-16|확인날짜=2014-04-28}}</ref><ref name="파이낸셜_1">[http://www.fnnews.com/view?ra=Sent0801m_View&corp=fnnews&arcid=201404190100221810011221&cDateYear=2014&cDateMonth=04&cDateDay=18 [여객선 침몰] 구명보트 작동 안했는데 ‘양호?’ 해경·해운조합 주먹구구식 판정], 《파이낸셜뉴스》, 2014.4.1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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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발생 전날 (2014년 4월 15일)
:안개 때문에 출발이 2시간 30분 지연된 세월호는 오후 9시에 476명(잠정)의 인원과 짐을 싣고 인천항을 출발하였다.<ref name="연합_1">[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4/05/14/0701000000AKR20140514158800054.HTML <세월호참사 한달> 출항·침몰·수색 일지], 《연합뉴스》, 2014.5.15</ref> 세월호에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일반인 104명, 선원 33명이 탑승하였다고 알려졌다.<ref>정부 공식 발표(2014년 4월 18일 오후 10시 50분 기준)</ref><ref name="연합_5">[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4/05/08/0701000000AKR20140508178800054.HTML 〈세월호참사〉 사망자 3명중 2명꼴 4층서 발견], 《연합뉴스》, 2014.5.8</ref> 세월호에는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렸음이 사고 후에 밝혀졌는데,<ref name="m19"/> 이로부터 인천항을 출발할 당시의 차량과 화물, 승객의 체중을 모두 더하면 적재 한도를 초과하는 것으로 계산되기도 한다.<ref name="파이낸셜_1"/>
 
* 사고 발생일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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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발생 2일(4월 17일)
:해경은 정조 시간대인 17일 1시 즈음부터 조명탄을 쏘아 수색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ref name="연합_6">{{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2&cid=984650&iid=1069201&oid=001&aid=0006866573&ptype=011|제목=<여객선침몰> 선체 수색중단…17일 새벽 재개키로|출판사=연합뉴스| 저자=특별취재팀| 위치=진도| 날짜=2014-04-16| 확인날짜=2014-04-16}}</ref>
:오전까지 집계된 사망자는 총 9명이었다.<ref name="서울_1">[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417500097 [속보]세월호 구조 현황, 사망자 명단, 침몰 원인 ‘변침’ 주목…진도 여객선 참사 사망자 추가 확인 총 9명 “에어포켓 만이 희망”], 《서울신문》, 2014.4.17</ref> 오후에는 민간 잠수부가 실종자들을 수색하다가 파도와 바람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가 20분 만에 낚싯배에 발견되어 구조되는 등 조류의 영향이 매우 심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gvalley.etnews.com/381930|제목=민간 잠수부 실종 후 구조, 정동남 "낚싯배가 발견해 구조했다"|출판사=Gvalley|저자=온라인뉴스팀}}</ref><ref>{{뉴스 인용|url=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492003|제목=민간 잠수부 실종 후 구조, 네티즌 “더 이상 인명피해 없길”|출판사=TVREPORT|저자=온라인 뉴스팀}}</ref><ref>{{뉴스 인용|url=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649570|제목=민간 잠수부 실종 후 구조…실종됐던 이유 들어보니|출판사=SBS CNBC|저자=SBSCNBC 온라인 뉴스팀}}</ref> 오후 8시 30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10명).<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7203907062|제목='침몰 세월호' 10번째 사망자 발견..신원불상
|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최동수}}</ref> 10분 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굵어진 빗방울과 조류 때문에 중단했던 수중 수색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때 선내진입을 위해 무인 로봇을 동원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7220704549|제목=해경 무인로봇 동원 수색재개..사망자 14명으로 늘어|출판사=연합뉴스|저자=특별취재팀}}</ref> 오후 11시 29분까지, 시신 8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18명).<ref>{{뉴스 인용|url=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1756960|제목=[진도 여객선 침몰] 세월호 시신 3구 추가 발견…사망자 13명
|출판사=MBN 뉴스}}</ref><ref>{{뉴스 인용|url=http://www.ajunews.com/view/20140417215204228|제목=[진도 여객선 침몰] 세월호 시신 한 구 추가 발견…사망자 14명|출판사=아주경제|저자=전기연}}</ref><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7232906267|제목=남녀 시신 2구씩 추가 발견..사망자 18명(속보)|출판사=연합뉴스|저자=연합뉴스}}</ref>
 
* 사고 발생 3일(4월 18일)
:오전 1시까지 시신 6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24명).<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8001208558|제목=<여객선침몰> 여성 시신 2구 추가 발견..사망자 20명(속보)|출판사=연합뉴스|저자=연합뉴스}}</ref><ref>{{뉴스 인용|url=http://www.ytn.co.kr/_ln/0115_201404180104078325|제목=사망자 24명으로 늘어...밤샘 구조|출판사=YTN|저자=YTN}}</ref> 또한 이 시간부터 세월호를 인양할 크레인 3대가 속속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선체인양 작업을 시작한다면 선체가 흔들려 에어포켓에 해수가 밀려들 위험성이 있다. 또한, 선체인양 작업 돌입은 사실상 구조작업의 포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선체인양 시작 시기에 대해서는 이 시간 기준으로 정해진 바가 없었다.<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8005507879|제목=<여객선침몰> 크레인 1시부터 속속 도착..신속 인양 '딜레마'|출판사=연합뉴스|저자=특별취재팀}}</ref> 오전 1시 14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25명).<ref>{{뉴스 인용|url=http://www.ytn.co.kr/_ln/0103_201404180114222471|제목=<속보> 60대 남성 시신 추가 인양...사망자 25명|출판사=YTN|저자=YTN|날짜=2014-04-18|확인날짜=2014-04-18}}</ref> 오전 8시 경, 썰물로 완전히 잠기지 않고 남아 있던 뱃머리 부분의 높이가 1m로 줄었다. 17일에는 2~3m 높이, 20~30m 정도의 길이였다. 이때부터 수면 위에 남아 있던 선체 일부가 점점 보이지 않기 시작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8083106742|제목=<여객선침몰> 세월호 뱃머리 물밖으로 1m만 남아(종합)|출판사=연합뉴스|저자=특별취재팀|날짜=2014-04-18|확인날짜=2014-04-18}}</ref> 오전 10시 56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26명). 이 시신은 사고 선박 450m 인근 해역에서 발견되어, 시신이 멀리 떠내려 갈 우려가 대두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8112712132|제목='침몰 세월호' 시신 1구 추가 발견..총 26명 사망|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박상빈|날짜=2014-04-18|확인날짜=2014-04-18}}</ref> 오후 12시 50분에는 시신 2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28명).<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8125005999|제목=여객선 침몰 사망자 28명으로 늘어(속보)|출판사=연합뉴스|저자=연합뉴스|날짜=2014-04-18|확인날짜=2014-04-18}}</ref> 오후 3시 38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구조대 잠수요원들이 선내 2층 화물칸의 문을 여는데 성공하였고 객실 진입은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8161211360|제목=[진도 여객선침몰]화물칸 문 개방..객실 진입 시도|출판사=뉴시스|저자=배동민|날짜=2014-04-18|확인날짜=2014-04-18}}</ref> 그러나 곧 잠수요원들은 화물 때문에 진입로를 개척할 수 없었다. 오후 3시 56분, 가이드라인마저 끊어져 수색을 더 전개할 수 없게 된 잠수요원들은 일단 철수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8/2014041802287.html|제목=‘세월호 침몰’ 구조요원, 화물칸 진입 이후 18분만에 철수 '가이드라인 끊어졌다'|출판사=조선닷컴|저자=조선닷컴|날짜=2014-04-18|확인날짜=2014-04-18}}</ref> 이후 잠수요원들은 다시 3층 입구에 도착해, 다시 진입을 시도하기 시작하였으나 결국은 진입할 수 없었다.<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8233104645|제목=선체 3층 도착..내부 진입은 실패|출판사=연합뉴스|저자=연합뉴스|날짜=2014-04-18|확인날짜=2014-04-18}}</ref> 오후 11시 45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29명).<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19004209122|제목=[진도 여객선침몰]60대女 시신 인양..29번째 사망자|출판사=뉴시스|저자=신동석|날짜=2014-04-19|확인날짜=2014-04-19}}</ref>
 
* 사고 발생 4일(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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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발생 7일(4월 22일)
:오후 7시까지 시신 26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113명).<ref>{{뉴스 인용|url=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1761550|제목=[속보] 세월호 침몰 참사, 계속되는 시신 수습…사망자 108명으로 늘어|출판사=MBN|저자=MBN}}</ref><ref name="newsis_1">{{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22191106069|제목=[세월호 참사]야간수색 돌입..사망자 113명|출판사=뉴시스|저자=신동석}}</ref> 또한, 22일부터 사흘 간 조류가 가장 느린 소조기였다. 이 잠수요원들은 24시간 집중수색에 돌입하였다.<ref name="newsis_1"/> 잠수요원들은 식당과 노래방 등 편의시설이 있는 3층과 객실이 몰려 있는 4층 수색에 집중하였다. 특히 승객이 많이 모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식당 칸 진입이 그들의 목표였다. 잠수요원은 21일에 오전 식당 칸으로 가는 진입로를 이미 개척했기 때문에 식당 출입문 개방에 주력하였지만 식당 옆 라운지에서 사망자를 발견했을 뿐 진입이 여의치 않았다. 해경 측에서는 "라운지와 식당 칸 사이에는 격벽이 있는데, 그것을 부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격벽을 뚫더라도 뒤엉켜 있는 부유물은 수색 시간을 더디게 하는 2차 장애요인이며, 일부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던 탑승자들의 유실 가능성도 컸다. 수색이 집중되더라도 조류가 다시 빨라지기 전인 24일까지 구조를 완료하는 것도 불투명하였다. 설치된 가이드라인 5개로는 1회 수색 시 2인 1조로 잠수부 10명만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가이드라인 5개를 추가로 설치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하루 이틀의 시간이 또 필요하였다. 이미 일부 시신의 훼손이 시작되고 있어서 얼굴만으로 신원을 알아보기 어려워질 것이 우려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22192607329|제목=격벽에 막혀.. 실종자 몰려 있을 3층 식당 칸 진입 난항|출판사=세계일보|저자=세계일보}}</ref> 오후 3시 40분, 우여곡절 끝에 식당 진입에 성공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423003703049&RIGHT_COMM=R1|제목=<세월호참사> 식당 진입 성공..4층다인실 수색 예정|출판사=연합뉴스|저자=특별취재팀}}</ref> 오후 9시까지 시신 8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121명).<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22233306659|제목='세월호' 희생자 121명으로 늘어..상당수 선체 내부 격실서 발견|출판사=SBS|저자=박원경}}</ref>
 
* 사고 발생 8일(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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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발생 25일(5월 10일)
:오전 0시 53분경 시신 1구를 추가로 수습하는 데 그쳤다(사망자 275명). 바지선 위로 물결이 넘어올 정도로 파도와 바람이 강해 재입수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이날 오전 4시에 사고 해역에, 오는 11일 오전 기준 풍랑 특보 발령을 위한 예비특보가 내려짐에 따라 현재 수색 작업이 잠정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ref>[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4/05/10/0701000000AKR20140510029600062.HTML <세월호참사> 사고 해역 풍랑예비특보…수색 잠정 중단] - 연합뉴스, 2014년 [[5월 10일]]</ref> 세월호 선체의 붕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붕괴 위험이 확인된 곳은 5층 선수 승무원 객실 통로와 중앙 특실 통로, 4층 선수 좌현 8인실 통로와 선미 30인실 통로 등 4곳이다.<ref name="yonhap0510">[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5/10/0200000000AKR20140510035400055.HTML?from=search <세월호참사> 선체, 붕괴진행…모두 증축 부분] - [[연합뉴스]], 2014년 [[5월 10일]]</ref>
 
* 사고 발생 26일(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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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구조팀은 기상 악화와 선내 일부 구역의 칸막이 약화 현상때문에 지난 10일 새벽부터 수중 수색을 중단하였다가 3일만인 이날 오전 0시 50분께 수색을 재개하였으며, 잠수사 16명을 투입해 2시간여 동안 유도줄을 점검하고 3층 선미 통로, 4층 선수 좌측 통로, 4층 선미 다인실, 5층 중앙 통로 등을 수색한 뒤 낮 정조시간에 다시 잠수사들을 투입하였다. 그 결과 사흘만에 시신 1구를 추가로 수습하였다(사망자 276명).<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5/13/0200000000AKR20140513116100054.HTML <세월호참사> 수색 사흘만에 시신 1구 수습…사망 276명, 실종 28명] - [[연합뉴스]], 2014년 [[5월 13일]]</ref>
 
* 사고 발생 29일(5월 14일)
:구조팀은 오전에는 수중 수색을 하지 못했으나 오후부터 수색을 재개해 총 5구의 시신을 수습하였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5/14/0200000000AKR20140514120752054.HTML?from=search <세월호참사> 14일 시신 5구 수습…사망 281·실종 23명(종합2보)] - 연합뉴스, 2014년 [[5월 14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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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이재정 (1944년)|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에게 "관내 학교의 부정부패를 감시할 수 있는 기구나 체제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였다. 이 당선인은 "가족대책위의 뜻을 잘 알겠다"며 "이 자리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 검토를 거친 뒤 결과를 말씀드리겠다"고 답하였다. 가족대책위는 간담회에 참석한 단원고 교장에게는 학교 정상화 과정에서 가족대책위의 뜻을 충분히 반영해 줄 것과 희생 학생들을 애도하기 위해 학교 정문에 놓인 조화와 사진 등에 대한 관리를 요구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6/14/0200000000AKR20140614041700061.HTML?from=search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 "학교비리 감시기구 만들어달라"] - 연합뉴스, 2014년 [[6월 14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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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일~9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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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발생 61일(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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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북상 이후 중단됐던 세월호 선체 수색작업이 재개됐으나 사고해역의 유속이 거세 난항을 겪고 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8시 56분 정조 시간에 맞춰 민·관·군 합동 구조팀이 수중 수색작업을 시도했으나 유속이 거세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새벽 3시 27분부터 4시 47분까지 7회에 걸쳐 14명의 잠수사가 선체 수색을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4/07/14/0701000000AKR20140714048100054.HTML 유속 빠른 대조기…세월호 수색 '난항'] - 연합뉴스, 2014년 [[7월 14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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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일~1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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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발생 91일(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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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발생 92일(7월 16일)
:수색팀은 마지막 남은 격실에 집중했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합동 구조팀은 총 4번의 정조기 가운데 두 차례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실종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구조 당국은 재수색을 위해 다각도 촬영이 가능한 특수 카메라를 투입하기로 했다. 재호흡기 방식은 미국팀이 투입도 못하고 철수한 데 이어서 이날 시험잠수를 하기로 한 국내 업체는 "현재 구조 당국이 쓰는 나이트록스 방식이 더 적절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시험 잠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f>[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532694 세월호 마지막 격실 진입 총력…"실종자 존재 가능성"] - [[JTBC 뉴스 9]], 2014년 [[7월 16일]]</ref>
 
* 사고 발생 93일(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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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발생 1060일(2017년 3월 10일)
:세월호 인양을 시도하겠다고 결정하였다.
:대통령 [[박근혜]]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탄핵 인용]]으로 파면되어 대통령직을 잃게 되었다.
 
* 사건 발생 1068일(3월 18일)
:3월 20일~22일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발표하였다.
 
* 사건 발생 1069일(3월 19일)
:기상이 악화될 것으로 보여 인양을 취소하였다.
 
* 사건 발생 1072일(3월 22일)
:오전 10시 : 세월호 시험 인양 시작
:오후 3시 30분 : 세월호 해저면서 1m 인양
:오후 8시 50분 : 세월호 본체 인양 시작
 
* 사건 발생 1073일(3월 23일)
:오전 3시 45분 : 세월호 스태빌라이저 육안으로 수면 위에서 관측
:오전 10시 : 세월호 수면위 2m 인양 성공
494번째 줄:
:오후 10시 : 진도군청 긴급 브리핑에서 좌현 선미 램프 제거하기로 결정
 
* 사건 발생 1074일(3월 24일)
:오전 6시 45분 : 세월호 좌현 선미 램프 제거 완료
:오전 11시 10분 : 세월호 수면위 13m 인양 성공
501번째 줄:
:오후 10시 : 세월호 반잠수선 데크 위에 정위치
 
* 사건 발생 1075일(3월 25일)
:오전 0시 : 세월호를 반잠수식 선박 안에 정위치 배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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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초충돌설
 
사고 발생 초기에는 언론이 안개에 의한 암초 미발견으로 인한, 충돌가능성을 집중 조명하였다. 생존자 중 일부가 들었다는 '쿵' 소리와 당시 기상상황이 안개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 주장이었다. 백점기 부산대 선박해양플랜트기술연구원장은 배의 좌초로 인한 사고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하였다.<ref>뱃머리급격히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8245438&cp=du</ref><ref>{{뉴스 인용|url=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1754151|제목=[속보] 진도 여객선 침몰 이유? "안개 탓으로 암초 부딪혀…"|출판사=MBN|저자=MBN}}</ref> 하지만 이 주장은 해당 해역에 암초가 없으며, '쿵' 소리의 원인이 다른 데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에 따라, 유력한 사고 원인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게 되었다.<ref name ="갤러리출판사" /><ref name="에어포켓"/><ref>{{뉴스 인용|url=http://news.sportsseoul.com/read/life/1356967.htm|제목=진도 여객선 침몰에 해양 전문가 "변침·암초 아닌 내부 폭발 가능성 있어"|출판사=스포츠서울|저자=e뉴스팀}}</ref>
 
;구조결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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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변경설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김길수 교수는 사고의 원인이 구조변경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실제로 세월호는 2012년 10월 일본에서 수입된 뒤, 이듬해 3월까지 전남 목포에서 객실을 증설하였다. 3~5층에 객실이 증설되었고 승선정원은 181명 추가된 921명으로 많아졌으며, 선박 무게도 239t 증가했다. 이에 따라 무게중심이 원래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배를 급격히 돌린다고 전복이 되지는 않는다" 며 "구조 변경 과정에서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갔다면 내ㆍ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졌을 때 배가 뒤집힌다" 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세월호 등록 검사를 맡았던 한국선급 관계자는 "객실 증설은 합법적인 공사, 점검 결과 운항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 등록 검사를 정상 통과했다" 고 밝혔다.<ref>{{뉴스 인용|url=http://media.daum.net/society/all/newsview?newsid=20140418033705172|제목=[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이미 선체 손상 가능성.. 급선회하며 쏠림현상 겹친 듯|출판사=한국일보|저자=김지은}}</ref> 한편, 객실만 증축한 게 아니라, 배 앞쪽 램프웨이도 철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출입구를 줄이면 화물을 더 실을 수 있고, 배 전체 무게가 가벼워져 그만큼 객실 증축에 유리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쪽에만 있던 램프웨이를 없애면서 오른쪽이 너무 가벼워진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ref>[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69398 객실 증축만이 아니다? 화물 더 싣기 위해 선수도 개조]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3일]] 방영</ref>
 
;변침설(항로변경설)
 
변침(變針) 이란 여객선이나 항공기 운항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 항로를 변경한다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월호가 급격한 변침으로 무게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쏠렸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침몰한 세월호가 좌로 기울었다는 점도 이같은 분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임긍수 목포해양대 해양운송시스템학부 교수는 "세월호 여객선 참사 원인이 암초가 아닌 급선회에 따른 외방경사로 추정된다" 고 밝혔다. 그는 유속이 빠른 해역에서 선박이 회전하게 되면 선체가 5~ 10도 가량 기울게 되고 그 영향으로 선체에 실려 있던 컨테이너나 화물이 한쪽방향으로 쏠려 선박과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설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사고 당시 발생한 '꽝' 소리는 결박된 화물들이 풀리면서 선박에 부딪혀 발생한 소리로 보고 있다.<ref name ="갤러리출판사">{{뉴스 인용|url=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397673287686054016|제목=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원인, 변침으로 잠정결론…'에어포켓만이 희망'| 출판사=Gvalley| 저자=온라인뉴스팀}}</ref><ref name="에어포켓">{{뉴스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171751441&code=940100|제목=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원인 변침으로 잠정 결론 ... '에어포켓만이 희망'| 출판사=티브이이데일리| 저자=온라인 뉴스팀}}</ref> 이 설은 17일 해경이 긴급 브리핑에서 잠정 결론으로 발표한 견해이기도 하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171751441&code=940100|제목= 세월호 사고원인 '변침' 잠정결론 ... 시간대별 구성| 출판사=경향신문| 저자=디지털 뉴스팀}}</ref>
그러나 세월호에 실려있던 차량 블랙박스를 통해, 선체가 10초만에 52도까지 급격하게 기울고 난 뒤에 차량이 움직이는 장면이 확인되면서, 변침이나 화물쏠림으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속도로 선체가 기우는게 확인되었다. <ref>{{뉴스 인용|url=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36139|제목= 블랙박스에 녹음된 세월호 침몰 순간 ‘급박한 음성’ | 출판사=KBS| 저자=최준혁 기자}}</ref>
또한, 2014년 국내 선박해양연구소의 모형항주실험을 통해, 2014년 당시 검찰이 주장했던 세월호 급변침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연구결과가 나왔지만, 4년간 은폐되었다가 2018년 3월이 되어서야 연구사실이 밝혀졌으며, <ref>{{뉴스 인용|url=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653283|제목= [세월호①][단독] "참사 직후 모형 수조 실험"…4년간 은폐 | 출판사=SBS| 저자=이한석 기자}}</ref> 2018년 1월, 네덜란드에서 정부가 발표한 AIS 항적을 수백번 실행했으나, 어떤 경우의 수를 두더라도 정부가 발표한 항적을 그리지 않았다. <ref>{{뉴스 인용|url=http://sbsfune.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E10009042406|제목= "GPS 오차?"…'그날, 바다' 김지영 감독, 반론을 반문하다 | 출판사=SBS| 저자=김지혜 기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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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4월 18일]] 오후 4시 5분 경, 수학여행 인솔자로 갔다가 사고를 당하고 구조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강민규 교감이 전남 진도체육관 뒤편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kyeong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847924|제목="혼자 살아 미안"… 세월호 침몰 사고서 구조된 단원고 교감 자살 |출판사=경인일보|저자=디지털뉴스부|날짜=2014-04-18|확인날짜=2014-04-18}}</ref> 교감의 지갑에서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유서에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이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달라. 내가 수학여행을 추진했다"며 시신은 화장한 뒤 사고 해역에 뿌려 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어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내용도 적혀있었다.<ref>{{웹 인용|url=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4041820443860203&outlink=1|제목=숨진 단원고 교감 '유서' 발견…"저승에서도 선생을…"|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신현식|날짜=2014-04-18|확인날짜=2014-04-18}}</ref> 자살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는 것이 있다. 그는 학생들을 남겨두고 구조된 것에 대해 주위에 “나만 혼자 빠져나온 것 같아 괴롭다”고 호소했으며, 그런 가운데 여객선 침몰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단원고 학생 학부모들로부터 “왜 당신만 살아 돌아왔느냐”는 등 강한 질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ref>[http://news.donga.com/Main/3/all/20140419/62879011/1 구조된 단원고 교감 숨진채 발견] - 동아닷컴([[동아일보]]), 2014년 [[4월 19일]] 게재</ref> {{출처|날짜=2014-4-19|강민규 교감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 후 1987년 중등학교 교사로 임용되어 윤리 과목을 가르쳤다. 2012년 3월 교감으로 승진하였으며, 2014년 [[3월 1일]]자로 단원고등학교에 부임하였다.}}
:[[5월 30일]] 오전 4시 57분께 [[화랑유원지]] 내 주차장에서 A씨가 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으며 숨진 A씨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편지지 1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남긴 유서에 ‘세월호로 숨진 학생들을 추모한다. 어른이어서 미안하다. 지갑에 든 돈(70여만원)을 유족들을 위한 성금으로 써달라. 시신은 기증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ref>[http://www.gobalnews.com/bbs/list.html?table=bbs_14&idxno=10058 "어른이어서 미안해" 안산 합동분향소서 50대 숨져] - 고발뉴스닷컴, 2014년 [[5월 30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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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해양 사건 및 사고}}
 
[[분류:세월호 침몰 사고| ]]
[[분류:2014년 대한민국]]
[[분류:2014년 해양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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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진도군의 역사]]
[[분류:안산시의 역사]]
[[분류:세월호 침몰 사고| ]]
[[분류:구원파]]
[[분류:2014년 4월]]
[[분류:2014년 교육]]
[[분류:4월 16일]]
[[분류:황해의 난파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