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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마침내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 이 계획을 구체화하여 [[1911년]] [[간도|서간도]]로 망명했다. [[이시영 (1868년)|이시영]], [[이동녕]], [[이상룡 (1858년)|이상룡]], [[윤기섭]] 등과 함께 간도 지방에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설립하는 데 참가했다. 경학사는 자치 조직, 신흥강습소는 훗날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는 교육 기관이었다.
 
무장 투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간도 지역에서 군정부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고 [[1919년]] [[서로군정서]](독판 이상룡)로 조직을 개편하고 참모장을 맡았다. [[3·1 운동]]의 단초 중 하나를 제공한 [[무오 독립 선언]]에 [[무오 독립 선언 민족대표 39인|39인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1919년]]경, 김동삼은 [[상하이]]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ref> 이이화, 《한국사이야기21. 해방 그 날이 오면》(한길사, 2004) 23쪽 </ref> [[1922년]]에 만주 지역 독립군 단체가 통합한 [[대한통의부]]에 가담했고, [[1923년]]에는 [[국민대표회의]]에 서로군정서 대표 및 의장으로 참가하였으며 [[1925년]] [[정의부]] 참모장에 취임했다.
김동삼은 유교적 학식과 함께 '만주의 호랑이', '남만의 맹호’로 불릴 정도로 용맹한 기질을 겸비하여 [[김좌진]], [[오동진 (1889년)|오동진]] 등과 [[맹장|3대 맹장]]으로 불리기도 했다.<ref>하민지 인턴기자 [http://www.newsmission.com/news/2008/02/01/1512.21991.html 2월에 기릴 인물, 독립운동가 오동진-문태수 선생] {{웨이백|url=http://www.newsmission.com/news/2008/02/01/1512.21991.html |date=20080514025628 }} 뉴스미션 2008년 2월 1일 작성</ref>
 
== 같이 보기 ==
*[[독립유공자로 대통령장을 수여받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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