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드 신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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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드 신화는 17세기부터 학자적 관심의 주제가 되어 왔다. [[비교신화학]] 및 [[역사언어학]]의 성과를 통하여 학자들은 노르드 신화 및 그 원류인 게르만 신화가 태고의 [[인도유럽조어]] 사용자들의 공통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낭만주의]]적 [[바이킹 부흥]] 문화의 결과 다양한 근현대 대중문화에 노르드 신화의 영향이 더해졌으며, [[게르만 신이교주의]]와 같은 신흥종교에서는 고대의 종교적 맥락까지 부활하고 있다.
 
==원전 문헌자료 ==
북유럽 신화에 대해 현존하는 기록 대부분은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공식적으로 북유럽이 기독교 사회가 되어버린 이후에도 2세기 이상 구전되며 보존되어 있었다. 13세기에 학자들은 이 구두로 남아 있었던 신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특히 기독교 이전의 신들이 실제 역사적 인물로 추적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학자, [[스노리 스투를루손]]을 통해 《[[신 에다]]》(산문 형식의 에다로 새로 지은 에다)나 《[[헤임스크링글라]]》가 쓰여졌다. 이들은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 개종 이후에 자료를 남겼지만 옛 신들을 악마로 매도하지 않고 학문적으로 탐구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노르드 이외의 초기 게르만 사회의 신화에 대한 정보를 담은 자료는 《[[앵글로색슨 전기]]》, 《[[베오울프]]》,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데인인의 사적]]》<ref>[[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데인인의 사적]]》은 북유럽 신들을 보다 강하게 에우헤메리즘화(euhemerism)신을 인간이 신격화 된 것이라는 해석시킨 것이다.</ref> 등이 있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도 제한적으로나마 정보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에다]]”라고 불리는 두 작품, 즉 스노리의《[[신 에다]]》와 《[[고 에다]]》가 노르드 신화 연구에 가장 귀중한 자료이다.
 
《[[신 에다]]》(산문 에다)를 13세기 초기에 쓴 [[스노리 스투를루손]]이라는 인물은 뛰어난 시인이자, 지도자로 [[아이슬란드]]의 외교관이기도 했다. 이 ‘에다’는 본래 그 기법을 배우고자 하는 시인들을 위한 입문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케닝(완곡표현 기법)이나 시에 담긴 은유 표현을 산문 형식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이러한 산문체의 이야기가 북유럽의 신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체계적이고, 시작과 끝을 일관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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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원전 외에도 [[9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북유럽에서 편찬된 《[[사가]]》나 《[[사트르]]》, 《[[스칼드]]》 등에도 북유럽의 신앙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들로부터 엿볼 수 있는 신화도 존재한다. 그 밖에도 [[스칸디나비아]]의 전승 등에도 남아 있는 전설이 있다. 그중 일부는 고대 영어로 쓰여진 ‘핀네스버그 단편’에 대한 이야기와 ‘데오르의 한탄’ 중에 등장하는 신화적인 이야기에 대한 언급 등 오래된 옛 게르만 문학에 나타나는 전설들이 뒷받침되고 있다. 수많은 단편적 문헌이나 전설이 남아 있을 때 학자들이 시의 뒤에 숨어있는 의미와 표현을 추론할 수 있다. 더불어 스칸디나비아에는 신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지명들이 많이 존재한다.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는 게르만족의 기독교 이전 기록을 많이 수집했다고 하지만 이는 그의 사후 다른 이들이 없애 버렸다.
 
레이크 룬돌(Rök Runestone)과 크비네비 목걸이(Kvinneby amulet)처럼 표면에 새겨져 있는 극소수의 [[룬 문자]]의 비문에도 신화에 대한 언급이 존재한다. [[토르]]의 낚시 여행과 볼숭 사가의 장면, [[오딘]]과 [[슬레이프니르]]와 [[펜리르]]에 삼켜지는 오딘 등 북유럽 신화의 장면을 그린 룬 비석이나 그림 비석도 있다. 현존하는 훈네스타트 비석(Hunnestad Monument) 중 하나에는 늑대에 걸터앉아 [[발드르]]의 장례식에 가는 [[히로킨]]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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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도 게르만족의 신앙에 대한 기술을 남겼다. [[삭소 그라마티쿠스]]는 《[[데인인의 사적]]》에서 스칸디나비아의 신들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아담 폰 브레멘]]은 《함부르크 교회사》를 저술했다. 또한 이러한 북유럽에서 저술된 것 외에도, 1세기경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저술한 《[[게르마니아]]》와 [[아흐마드 이븐 파들란|이븐 파들란]]의 《볼가 불가르 여행기》 등에도 게르만 민족의 신앙 진술을 남겨 두었다.
 
== 문헌자료 ==
노르드의 신화는 대부분 구전되었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에다]]》, 《[[헤임스크링글라]]》(''Heimskringla'') 등을 집필한 [[아이슬란드]]의 [[스노리 스툴루손]] 등 후세 학자들이 기록한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 개종 이후에 자료를 남겼지만 옛 신들을 악마로 매도하지 않고 학문적으로 탐구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노르드 이외의 초기 게르만 사회의 신화에 대한 정보를 담은 자료는 《[[앵글로색슨 전기]]》, 《[[베오울프]]》, [[삭소 그라마티쿠스]]의 《[[데인인의 사적]]》 등이 있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도 제한적으로나마 정보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에다]]”라고 불리는 두 작품, 즉 스노리의《신(新) 에다》와 《고(古) 에다》가 노르드 신화 연구에 가장 귀중한 자료이다.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는 게르만족의 기독교 이전 기록을 많이 수집했다고 하지만 이는 그의 사후 다른 이들이 없애 버렸다.
 
《[[고 에다|고(古) 에다]]》는 운문 에다로도 알려져 있으며 [[13세기]] 후반에 기록되었다. 29개의 장시(長詩)를 포함하는데, 그중 11개는 게르만족의 신에 관한 내용이며 나머지는 시구르드(중세 [[고지 독일어]] 서사시 《[[니벨룽겐의 반지]]》의 지크프리트에 해당) 등 영웅에 관한 내용이다. 스노리의 에다보다 기록 시기가 늦어지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내용 자체는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 《[[고 에다]]》라고 부른다.
 
《[[신 에다|신(新) 에다]]》는 산문 에다 혹은 [[스노리 에다]]로도 알려져 있으며 《고 에다》보다 50년쯤 전 스노리 스툴루손이 기록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