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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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 김석(金錫)
| 중시조 = 김용비(金龍庇), 김용필(金龍弼), 김용주(金龍珠)
| 집성촌 = [[경상북도]] [[의성군]]·[[군위군]]·[[봉화군]]·[[안동시]]·[[청도군]]·[[청송군]]<br>[[강원도]] [[평강군]], [[화천군]] <br /> [[경기도]] [[광주시]], [[안성시]] <br /> [[충청남도]] [[서산군]], [[천안시]] <br /> [[충청북도]] [[괴산군]], [[음성군]], [[청원군]] <br /> [[전라북도]] [[정읍시]] <br /> [[전라남도]] [[장성군]] <br /> [[경상남도]] [[합천군]]<br>[[평안남도]] [[용강군]] <br /> [[평안북도]] [[태천군]] <br /> [[함경남도]] [[이원군]]
| 인물 = 김영렬, [[김안국]], [[김정국 (1485년)|김정국]], [[김성일 (1538년)|김성일]], [[김우옹]], [[김지수]], [[김진화 (1793년)|김진화]], [[김대락]], [[김하락]], [[김동삼]], [[김창숙]], [[김성범 (1899년)|김성범]], [[김일련]], [[김명윤]], [[김중위]], [[김충수]], [[김원웅]], [[김희선 (정치인)|김희선]], [[김윤주 (정치인)|김윤주]], [[김병준 (1954년)|김병준]], [[김국진]]
| 년도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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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성 김씨'''(義城 金氏)는 [[경상북도]] [[의성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始祖) '''김석'''(金錫)은 [[경순왕]]의 아들이며, [[고려 태조]]의 외손으로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졌다. [[의성군|의성]]의 고호가 문소(聞韶)인 관계로 '''문소 김씨'''(聞韶 金氏)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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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시조 김석(金錫)이 의성군 책봉되었다는 점은 시대성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의성(義城)을 본관으로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후대에 이르러 누군가가 김석(金錫) 계열을 의성 김씨로 쓰게 된 것인지가 불분명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의성 김씨 뿐 아니라 여러 성씨에게서 다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라 하겠다. 시조 김석(金錫)으로부터 4세까지의 선계(석-일-홍술-공우)가 불분명하고, 역사서에 의성을 본관으로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5세 김용비(1992에 간행된 대동보에는 9세라 한다)에 이르러서 부터이다. 경자보 중 하나에는 3세 홍술이 빠지고 국-경진-언미-습광으로 이어지는 4대가 첨가되었다. 그러나 구보인 ≪종파보≫는 '착오가 두려워 세계 속에 편입시키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ref>
 
후손 김공우(金公瑀)대에 와서 크게 번창하였는데, 그의 아들 용비(龍庇)·용필(龍弼)·용주(龍珠) 형제대에 이르러 세계(世系)가 갈린다. 장자 '''김용비'''(金龍庇)는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입으로 [[안동]]으로 몽진했을 때 의성 일원에서 도적들을 물리치고 민심을 수습한 공으로 추절 보절공신 '의성군'(義城君)에 책봉되었으며, 금자 광록대부(金紫 光祿大夫) 태자 첨사(太子 詹事)를 지냈다. 차자 '''김용필'''(金龍弼)은 수사공(守司空)을, 3자 '''김용주'''(金龍珠)는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장자 김용비(金龍庇)계에서 조선조 맹암(孟巖) 김영렬(金英烈), 오봉(鰲峯) 김제민(金齊閔), 칠봉(七峯) 김희삼(金希參), 학봉(鶴峰) [[김성일 (1538년)|김성일]](金誠一),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김창숙]](金昌淑)등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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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785년]] [[김사목]]이 [[경주 김씨]] 족보를 수보(修普) 하면서 《고려평장사 보국대안군 김은열 묘지명》을 추기(追記) 하였는데, 2자 '굉'(鍠)을 '황'(湟)으로, 3자 '명'(鳴)을 '명종'(鳴鍾)으로 개명하고, 4자 은열(殷說)의 시호를 보국대안군(輔國大安君)으로 작호(作號) 하는 등 가필(加筆)을 심하게 하였다. 이후부터 [[경주 김씨]] 일문 족보류에 [[경순왕]] 8자(子)들이 등재되기 시작하였다.<ref>경순왕 8자(子)는 일(鎰), 굉(鍠)[또는 황(湟)], 명(鳴)[또는 명종(鳴鍾)], 은열(殷說), 중석(重錫), 건(鍵), 선(鐥), 종(鐘)이며, 2자 굉(鍠)[또는 황(湟)]과 제4자 은열(殷說)는 고려 태조의 외손인 낙랑공주 소생으로 평장사를 지내고 공(功)이 있는 신하여서 특별히 장지(葬地)를 하사해 주었다고 한다.</ref>
 
그러나 《김은열 묘지명》에 나오는 [[경순왕]] 8자(子)들의 이름은 《고려사》 등의 문헌(文獻)은 물론이고, 그 어떤 금석문(金石文) 자료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 묘지명 형태도 배위(配位) 관계 및 생애 등도 누락되어 있고 단지 형제 서차만 기술되어 있을 뿐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1814년]] 김계락(金啓洛)이 찬하고, [[경주 김씨]] 일문들이 세운 「신라경순왕전비」에 [[경순왕]]은 전비 박씨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태자(太子), 차자(次子), 영분공(永芬公)이며, 딸은 고려 경종에게 출가하였다고 한다. 후비 왕씨와는 5남 2녀를 두었는데 은열(殷說), 석(錫), 건(鍵), 선(鐥), 추(錘)이며, 장녀(長女)는 이금서(李金書), 차녀(次女)는 황경(黃瓊)에게 출가하였다고 한다. 여기서는 《김은열 묘지명》에 나오는 1자 일(鎰), 2자 황(湟), 3자 명종(鳴鍾)을 배척하고, 5자 ‘중석’(重錫)을 ‘석’(錫)으로, 8자 ‘종’(鐘)을 ‘추’(錘)로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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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적 ==
* [[광주 김씨]](廣州 金氏) : 시조 김녹광(金綠光), 광주군(廣州君) - [[1236년]](고종23) 상장군, 몽고군 격파
* [[개성 김씨]](開城 金氏) : 시조 김용주(金龍珠), 평장사(平章事) - 김공우의 3자
* [[설성 김씨]](雪成 金氏) : 시조 김지선(金芝宣) - 김용주의 증손자
* [[고령 김씨]](高靈 金氏) : 시조 김남득(金南得), 일명 김기지(金麒芝) - 김공우의 장자 김용비의 후손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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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 고려 ===
* 김홍술(金弘述) : 또는 김홍술(金洪述), 고려 개국 공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4등, 의성 성주(義城 城主),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짐, 충사(忠祠)에 배향, 일파(一派)를 이루었다.
* 김녹광(金綠光) : [[1236년]](고종23) 상장군으로 몽고군을 격파하는 데에 공을 세움,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짐, [[광주 김씨]](廣州 金氏) 시조
* 김훤(金晅. 1234 ~ 1305): 고려 후기 문신, 김홍술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각(金閣), [[1260년]] (원종 1) 문과 급제,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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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金曣) : 일명 김연(金㬫), 호는 희옹(晦翁),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벼슬이 지평(持平)이었으며, 일파(一派)를 이루었다.
* 김광부(金光富. ? ~ 1379) :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침공하자 이를 수복한 공으로 [[1363년]](공민왕 12) 2등공신이 되고, 이어 계림윤(鷄林尹), 합포도순문사(合浦都巡門使)를 역임하다 [[1379년]](우왕 5) 9월 왜구가 가수현(嘉樹縣.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이르자 이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함,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짐
* 김존성(金存誠) : 김연(金曣)의 아들, [[1362년]](공민왕 11) [[고려]] 문과 급제, 예의 판서(禮儀 判書) 역임
* 김거두(金居斗) :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문신, 태자첨사 김용비(金龍庇)의 현손, 《삼국사기》중간본과 발문을 지음, 김해부사·봉익대부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역임, 만년에 [[안동]]의 풍산현에 거주하여 그 뒤 자손들이 안동에 세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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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이 보기 ==
*[[고령 김씨]]
*[[개성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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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김씨]]
 
==논란==
국회의원 [[김희선 (정치인)|김희선]]은 의성 김씨 [[김일련]]의 딸인데 안동 김씨로 알려진 [[김학규]]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여 법적 공방이 있었다. 법정에서 [[김희선 (정치인)|김희선]]씨는 증조 김순옥과 선우순 사이에서 김성범, [[김학규 (1900년)|김학규]]가 태어났는데, 선우순이 [[안동 김씨]] 김기섭과 결혼하면서 [[김학규]]을 데려가 형제지간 이지만 본관이 달라졌다고 하였다.
 
안동 김씨에서는 김학규가 안동 김씨 돌림자 홀 규(圭)가 아닌 의성 김씨 돌림자 별이름 규(奎)를 쓰고, 김학규의 자식들도 의성 김씨 돌림자 일(一)자를 쓴다면서 김학규는 안동 김씨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김학규 장남 김일진씨도 "아버지와 김성범이 친형제 라고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반면 [[김일련]]이 독립 운동을 했다는 주장은 근거를 찾을 수 없고, 김희선씨는 김학규의 직계 후손이 아닌 방계 혈족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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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
* 2000년 253,309명
* 2015년 287,46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