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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부터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민관 총파업이 발생하여, 제주도의 경찰 및 사법기관을 제외한 행정기관 대부분인 23개 기관, 105개의 학교, 우체국, 전기회사 등 제주 직장인 95%에 달하는 4만여명이 참여하였고, 심지어 제주 경찰의 20%도 파업에 참여하였다. 경찰은 [[3월 15일]]부터 파업 관련자 검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3월 17일]]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는 군중에 또 다시 발포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경찰은 [[4월 10일]]까지 500명 가량을 검거하였는데 검거자 중 66명의 경찰이 파면되었고 그 자리는 [[서북청년단]] 소속으로 충원됨으로써<ref name="강준만 20">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20~21쪽</ref> 제주도민들과 군정경찰 및 [[서북청년단]] 사이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더욱 커져 갔다.
 
[[1947년]] 3월 19일 미군정 정보보고서에서는정보 보고서에서는 미군정은 제주도주민제주도 주민 70%가 좌익또는좌익 또는 그 동조자로 인식했다. [[박헌영]]의 비서 [[박갑동]]은 어느정도어느 정도 지지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ref>[http://www.kbs.co.kr/1tv/sisa/war/program/ KBS 한국전쟁 10부작]</ref>
 
=== 사건의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