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흥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메이 (토론 | 기여)
잔글 메이(토론)의 편집을 61.85.54.48의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태그: m 모바일 앱 안드로이드 앱 편집
59번째 줄:
[[서농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농사동과 내서천을 합쳐 농사동의 '농'(農)자 와 내서천의 '서'(書)자를 합쳐서 농서리라 칭했고 행정구역 개편시 외서천과 내서천을 합쳐 서천리라 칭했는데 속설에 의하면 선비들이 동리앞에 흐르는 냇가에 모여 글을 읽었으므로 글서의 서(書)와 내천의 천(川)자를 합쳐 서천리라 칭하였다고 전해진다.
 
[[기흥동]]은 고려시대 용구현과 조선시대 용인현에 속해있던 역참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지내면의 영통리 지역과 기곡면의 일원을 합치고 구흥면과 내읍삼면 일부를 합친 지역으로 「기곡(器谷)」 에서의 첫글자와「구흥 (駒興)」에서의 끝글자를 합쳐서 기흥면이 되었다.<ref>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편집부, 국토지리정보원(2008년)</ref>는 명칭을 옛 기흥읍의 공세리와 고매리를 합친 행정동명으로 정한 것이다.
 
==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