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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statesgeneral.jpg|섬네일|250px|왼쪽|1789년 5월 5일 베르사유 궁전의 삼부회 개회식]]
당시 프랑스는 [[미국 독립 전쟁]] 등 거듭된 전쟁과 기근으로 경제가 파탄할 지경에 이르렀고,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그때까지 과세를 면제해 온 [[제1신분]](성직자)와 [[제2신분]](귀족)에 과세를 할 수밖에 없었다. [[1789년]] [[5월 5일]] [[루이 16세]]는 새로운 과세 제도를 규정하기 위해 [[1614년]] 이후 열리지 않았던 신분제 의회인 《[[삼부회]]》를 175년만에 [[베르사유]]에 소집하다소집하였다. 1614년 모델에 따라 삼부회는 각 신분별 동일한 대표자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3신분]](평민)은 지방 의회에서처럼 2배수를 요구했고, 결국 이 요구는 관철되었다. 이후 [[5월 5일]] 삼부회가 소집되었고 제3신분의 대표들이 기존의 신분별 표결 방식에 대해 [[항변]]할 것은 명백했다. 왜냐하면 578명의 제3신분 대표가 다른 신분들 각각과 동일함 비중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금 문제에만 국한하려던 왕실의 의도는 빗나갔다. 삼부회는 세 개의 계층이 따로 회합을 가짐으로써 즉각 파행되었고, 국가의 재정보다는 자신들의 안위에 대한 논란만 다루었다. 표결 방식에 대해 제1신분과 제2신분은 삼부회에서 분리 심의와 신분별 투표를 주장했고, 제3신분은 합동 심의와 인원별 투표를 주장하면서 신분 간에 격렬한 대립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