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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8월에 쁘리디 내각은 총사퇴를 하고 뒤를 이은 [[타완 탐롱나와사왓]] 내각이 세워졌지만 [[1947년]] 11월의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다. 그 후 경찰은 팃, 붓과 사건발생 시에 궁전에 있었던 다른 시종을 합쳐 세 명을 라마 8세의 살해에 관여한 혐의로 체포하였다.
 
이 세 명의 재판은 확고한 증거가 없이 상황 증거에 의존하여 진행하였으며, 피고들은피고인들은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지만 [[1954년]] [[10월 12일]] 최고재판소 판결에 의해 세 명3명 모두에 대한 사형이 확정되었고, 다음 해 [[2월 17일]] 논타부리의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쁘리디 전 수상도 살해 모의에 참가를 한 것으로 의심을 받았지만, [[1947년]] 11월의 쿠데타가 일으나자발생하자 외국으로 망명을 하여망명하여 체포되지 못하였다. 지금도 태국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
 
이후 [[라마 9세]]의 협력 하에 이 사건을 조사한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윌리엄 스티븐슨]]은 그 저작 《[[혁명의 왕]]》(The Revolutionary King)에서 증거를 제시해, 구 일본군의 참모 [[쓰지 마사노부]]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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