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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성'''(길림성, {{zh|c=吉林省|p=Jílín Shěng}}; {{llang|mnc|girin ula}})은 [[중화인민공화국]] 동북부의 성이다.
 
== 역사 ==
그러나 [[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이 [[베이징 조약]]으로 [[1860년]]에 [[러시아]]로 넘어가면서부터 청조(淸朝)는 [[한족]]의 이주를 허용하기 시작하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둥 성]] 지역에서 건너왔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미 한족이 이 지역의 주된 민족그룹이 되어 있었다. [[1932년]]에는 일제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세워지면서 '''지린성'''은 그 판도에 속하게 되며 '''지린성'''의 [[창춘]]은 만주국의 수도였다. 일제가 [[1945년]]에 패망하면서 이 지역의 중국의 다른 동북지역과 만찬가지로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떨어지게 된다. [[1946년]] [[통화 사건]]으로 [[인민해방군]]과 [[독립군]]은 [[일본군]] 패전병을 진압했다.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만주를 발판으로 하여 다른 중국 지역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1949년의 '''지린성'''은 현재보다 훨씬 작아서 단지 [[창춘]]과 [[지린시]] 일대를 포함할 뿐이었다. 당시의 성도는 [[지린시]](길림시, 吉林市)였고, [[창춘]](장춘, 長春)은 성으로부터 독립된 직할지역이었다. 1950년대에 지린성은 확장되어 현재의 경계를 확정한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지린성은 팽창하여 네이멍구의 일부를 차지하면서 한때는 경계의 일부를 [[몽골]]과의 국경으로 설정하기도 하였으나 후에 복귀되었다. 현재 지린 성은 중공업에 기반한 다른 중국의 둥베이 지방과 마찬가지로, 사유화와 관련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있다. [[1954년]] 9월 27일에는 지린성 인민정부가 지린시에서 창춘시로 이전했다.
 
== 지리 ==
지린성은 남동부가 높고 북서로 가면서 낮아지는 형태를 보인다. 평원은 전체 면적의 30~40%를 차지하고, 산지 구릉 지대가 60% 가량 된다. 주요 산지로는 [[백두산]](白頭山), 길림합달산(吉林哈達山 2402m), 용강산(龍崗山 1986m), 로령(老岭) , 대흑산(大黑山 2168m) 등이 있다.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높이는 2744m이다. 주요한 평원과 분지로는 송눈(松嫩) 평원, 송요(松遼) 평원, 연길(延吉) 분지, 혼춘훈춘(훈춘, 琿春) 분지, 돈화둔화(둔화, 敦化) 분지 등이 있다.
 
지린성의 수계는 크게 넷으로 나누어지는데, 가장 동남쪽으로 흘러가는 [[압록강]]과 [[두만강]], 남쪽 경계를 따라서는 [[랴오허|요하강]]의 지류들, 그리고 나머지 지역들은 [[아무르 강]]의 지류들인 [[쑹화강|송화강]]과 무단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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