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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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설명=바티칸 공식 사이트
}}{{본문|교황령}}
바티칸이 자리잡기 전에 이곳 [[바티칸 언덕]](Mons Vaticanus)은 원래 고대 로마인들이 [[로마 신화]]의 [[키벨레]]와 그 배우자 [[아티스]]를 숭배하던 곳이었으며, [[점괘|점]]을 치는 언덕(ager vaticanus)이라 부르며 오랫동안 신성하게 여겨왔다. 그 때문에 로마인들은 이곳에 거주민들의 통행과 정착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서기 1세기 초에 [[대 아그리피나]](BC 14년 - AD 33년 10월 18일)는 바티칸 언덕과 그 주변에 물을 대고 그 자리에 자신의 개인 정원을 건립하였다. 또한 로마 황제 [[칼리굴라]](37년 - 41년)는 이곳에 거대한 원형경기장(Circus Gaii et Neronis)을 만들었고, 나중에 황제 [[네로]] 시대에 완공되었다. [[성 베드로 광장]] 중앙에 장식된 [[오벨리스크]]는 본래 칼리굴라가 원형경기장을 꾸미기 위해 서기 37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로마로 가져와 경기장의 장식에 사용되었다.
 
서기 64년 로마에서 일어난 대화재 이후 바티칸 언덕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성 베드로]]도 이 순교자 중 한 사람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 베드로는 원형경기장에서 거꾸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원형경기장 맞은편에는 [[비아 코르넬리아]]를 경계로 삼아 고대 로마 시대의 공동묘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4세기]] 초에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이 언덕은 다신교의 각종 이교 신들을 위한 제단과 무덤, 비문 등이 지어졌었다. 이러한 고대의 잔재들은 수세기에 걸쳐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공사를 할 때 빈번하게 발견하였으며, [[교황 비오 12세]] 치세에는 본격적으로 대규모적인 발굴작업을 착수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