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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호 니루 ==
1616년, [[누르가치]]가 [[흥경|허투 아라]]에서 나라를 수립했다. 그 후 후금은 점차 서남, 서북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 1621년에는 수도를 [[랴오양]]에, 1625년에는 다시 [[선양시|묵던]]으로 천도하면서 만주 지역 전역을 장악하였다.
 
[[건주여진]]의 이러한 국가적인 발전과 대외 팽창은 외족에 대한 납치와 수탈을 동반하고 있었다. 건주여진은 세 차례의 전쟁을 통하여 수많은 조선 병사와 조선인을 전쟁 포로 혹은 피랍인으로 만주 지역으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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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세 차례의 전쟁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이 전쟁 포로 혹은 강압적인 납치를 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속환되었거나 도망한 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조선인들은 만주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만주에 남았던 조선인들은 극히 일부분이 팔기군에 편입되고, 대부분은 [[만주족|만주]] 왕공 귀족의 노예로 전락하였다.<ref>재외동포사 총서 13, 《중국 한인의 역사》 (상)</ref>
 
다양한 경로를 거쳐 팔기만주에 들어온 조선인의 상황은 《[[팔기만주씨족통보]]》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이 사료에는 팔기만주 소속의 1168개 성씨가 종족 출신별로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고려, 즉 조선의 성씨 43개가 포함되어 있다.<ref>{{서적 인용|author=구범진|authorlink=|title=청나라, 키메라의 제국|series=서울대 인문 강의|publisher=민음사|isbn=9788937484940|page=107~108}}</ref>
 
팔기에 편입된 조선인을 살펴보면, 정황기(正黃旗) 만주통령(滿洲統領) 제4참령 제9좌령은 투항한 조선인 장정들로 구성되었다. 정황기 만주통령 제4참령 제1좌령은 만주족과 조선인의 혼성으로 편성되었으며, 정백기 만주통령 제1참령 제12좌령과 제14좌령 역시 투항한 조선인으로 조직되었다.<ref>『八旗通志』券4, 旗分志, 38쪽; 같은 책 券16, 旗分志, 3쪽닫기</ref> 강희제 말기에 이르러 이러한 고려좌령은 8개로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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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hoto 1900 Albazinians in Tianjin.jpg|섬네일|400px|1900년에 촬영된 오로스 니루의 가족.]]
 
오로스 니루({{llang|mnc|{{MongolUnicode|ᠣᡵᠣᠰ<br>ᠨᡳᡵᡠ}}|Oros Niru}}) 소속의 인물들은 모두 러시아인의 후손이다. 1644년 이전에 청 제국에 유입된 7개의 [[코사크]]가 있었는데, 그들은 만주로의 초기 러시아 이민자들 중 일부였다. 1640년대부터 1680년대까지 [[알바진]](약사) 일대를 중심으로 청 제국과 [[루스 차르국|러시아 제국]]의 갈등이 격화되었다. 1651년, 순치제는 알바진의 러시아 코사크의 거점에 대한 공세를 명령했다.<ref>{{Cite서적 book인용|title=200 years of Orthodoxy in China|last=Adoratsky|first=Nikolai|publisher=廣東人民出版社|year=2007|isbn=9787218055602|location=Guangzhou|pages=}}</ref> 1653년, 하바로프의 [[시베리아]] 원정은 결국 만주인과 코사크인간의 무력충돌로 변했다. 이 분쟁 때 만주군에게 붙잡힌 코사크인들은 청 제국으로 넘어갔다. 현지의 진수흑룡강등처장군(鎭守黑龍江等處將軍, {{llang|mnc|{{MongolUnicode|ᠰᠠᡥᠠᠯᡳᠶᠠᠨ<br>ᡠᠯᠠᡳ<br>ᠵᡝᡵᡤᡳ<br>ᠪᠠᠪᡝ<br> ᡨᡠᠸᠠᡴᡳᠶᠠᡵᠠ<br>ᠵᡳᠶᠠᠩᡤᡳᠶᡡᠨ}}|Sahaliyan Ulai Jergi Babe Tuwakiyara Jiyanggiyūn}})은 이들을 [[북경]]과 묵던으로 보내기로 했다. 1668년에 붙잡힌 33명의 러시아 군인들도 북경으로 보내졌다.<ref>{{Cite저널 journal인용|last=Zhang|first=Danhui|date=Winter 2009|title=清初雅克萨战役之始末|url=http://www.iqh.net.cn/info.asp?column_id=4585|journal=清史所|volume=|pages=|via=}}</ref>
 
1685년에서 1687년 사이에 이루어진 알바진에서의 군사작전은 [[청-러시아 국경 분쟁]]의 종말을 알렸다. 청 제국 정부는 러시아 포로들에게 청 황제를 섬길 것인지 물었고, 이때 복무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러시아로 송환되었고 머무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북경에 정착했다. 청 정부는 이 이주민들에게 거처와 묘지를 제공했다. 정부는 또한 그들의 결혼을 주선했다.
 
오로스 니루의 첫 번째 좌령(佐領, ({{llang|mnc|{{MongolUnicode|ᠨᡳᡵᡠ ᡳ<br>ᠵᠠᠩᡤᡳᠨ}}|Niru-i Janggin}}) 우랑거리(伍郎各里)가 죽은 후, 그의 아들 뤄둬훈(羅多渾)이 그의 지위를 계승했다. 뤄둬훈이 죽은 후, 오로스 니루는 중앙정부의 관할하에 들어왔다.<ref>{{Cite서적 book인용|title=聽雨叢談|last=Feng|first=Fuge|publisher=中華書局|year=1997|isbn=9787101016987|location=|pages=}}</ref>
 
치구 니루와 마찬가지로 오로스 니루의 구성원들은 관직진출에 제한이 있었는데, 그들은 정5품 이상의 관직으로 승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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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문헌 ==
* {{Cite book서적 인용|authors = 鄂尔泰 等 |title = 八旗通志初集 |publisher = 东北师范大学出版社 |year = 1985 |ISBN = |url = http://book.douban.com/subject/4195930/ |ref = harv}}
* {{Cite book서적 인용|author = 福格 |title = 听雨丛谈 |publisher=中华书局 |year = 1984 |ISBN = 9787101016987 |url = http://book.douban.com/subject/1042233/ |ref = harv}}
== 노트 ==
<references group="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