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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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와의 대립 ====
폭로전은 경선 때부터 시작되었다. 전당 대회를 3일 앞둔 2007년 8월 17일, 박근혜 경선후보는 "거짓으로 한나라당이 과연 집권할 수 있습니까?"라고 발언하기도 했다.<ref>{{웹 인용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14&aid=0000056525|제목 = 되돌아 본 대선|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07년 12월 20일|확인날짜 = 2013년 3월 23일}}</ref> 이명박 후보측은 도곡동 땅에 대한 검찰 발표가 판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자체 조사와 각 언론사 조사를 종합할 때 10% 이상 차이로 낙승할 거라고 주장했다.<ref name="ReferenceA">{{웹 인용 |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058737_5780.html|제목 =  |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07년 8월 17일|확인날짜 = 2013년 3월 23일|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30927121334/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058737_5780.html|보존날짜 = 2013년 9월 27일|깨진링크 = 예}}</ref> 이와 관련해 진수희 대변인은 "1위 후보가 압승을 해야 경선 후유증이 최소화 된다라는 생각이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우리가 15% 격차로 압승할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ref name="ReferenceA"/> 그러나 박근혜 후보측은 자체 전수 조사 결과 근소하게나마 앞서기 시작했다면서 각종 의혹으로 이 후보에 불안감을 느낀 당심이 옮겨온다고 주장했다.<ref name="ReferenceA"/> 당시 세대별 지지율을 보자면, 이명박 후보는 3,40대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은 반면, 박근혜 후보는 50대 이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었다.<ref name="ReferenceA"/>
 
[[2007년]] [[8월 20일]] 전당대회에서 그는 [[박근혜]], [[원희룡]], [[홍준표]] 후보와 경선을 치러 2위인 박근혜 후보를 2,452표 차이로 누르고,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한나라당 후보자 선출 선거|한나라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확정되었다.<ref name="primaryresult">{{뉴스 인용|제목 = 한나라당 대선후보 이명박 확정|url =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07/08/20/0502000000AKR20070820157700001.HTML|출판사 = [[연합뉴스]]|저자 = 김현재|날짜 = 2007-08-20}}</ref> 당시 일반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박근혜에게 모두 패했지만, 전화상 1표를 실제의 5표로 환산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를 앞지름으로써 승리하였다. 표의 등가성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일었으나, 박근혜 후보가 승복함으로써<ref>{{웹 인용 |url =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059640_5780.html|제목 = 박근혜 후보 "깨끗이 승복"|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2007년 8월 20일|확인날짜 = 2013년 3월 23일}}</ref>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러한 경선 승리로 인해 모든 것이 이명박에게 돌아갔고, 그 결과 10월 초 55.4%라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ref name="imnews.imbc.com"/> 그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여 처음부터 승리가 예상되었다. 이명박은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을 모토로 내걸었다.